* 본 글은 2021년 1월 11일 MMS를 기록, 요약, 보완한 것이다.




오늘은 @yoonbeen__(그림 그리는 사람)이 되어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그림에 관한 제 관심 분야 중 하나는 컨셉 아트/배경 아트입니다. 영화나 게임 같은 프로젝트에서 전반적인 컨셉과 설정들을 보여주주는 이미지들이죠. 작가 개인의 개성을 표현하는 것만큼, 혹은 그보다도 불특정 다수의 대상에게 작품에 관한 정보를 직관적으로, 흡입력있게 전달하고 또 매력적으로 느껴지게끔 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이런 이미지를 구성하는 데에는 어떤 보편적인 공식들이 알음알음 알려져있습니다.


정보와 매력을 모두 갖출 것, 우리가 조경인으로서 그리는 그림들과도 비슷한 필요조건입니다. 그래서 조경 그림을 그릴 때에도, 더 나아가 좋은 공간을 상상하는 데에도 이런 공식들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공식들만이 정답인 건 아니죠. 우리가 보여주고자 하는 바가 무엇이냐에 따라 이 공식들을 전혀 신경쓰지 않고도, 정 반대로 접근해도 좋은 이미지를 그릴 수 있습니다. 현실화될 공간을 위한 이미지인만큼 아예 다른 접근법이 필요하기도 하구요. 그래도 짧은 시간에 눈길을 잡아 끄는 장면을 만들어내고 싶다, 그런데 어떤 걸 신경쓸지 고민이 된다, 그럴 때에는 이 공식들이 좋은 지침이 되어줄 수 있는 것 같아요. 오늘은 이들 중 조경하는 사람으로서 특히 유용했던 몇 가지를 공유해보려합니다.




1. 구성

우리가 곧잘 얘기하는 화면비라던지, 나무는 홀수 그루 단위로 심는다던지, 모퉁이나무 같은 것들 모두 좋은 구성을 만들기 위한 방법들입니다. 같은 색감의 같은 장면을 표현한 이미지여도 어떤 구성을 취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이미지가 주는 느낌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그림들에서 우리는 그림의 흐름을 결정하는 큰 선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선들 에서 속도감을 읽어본다면, 어떤게 느리고 어떤게 빠른 선일까요? 제일 느린 건 (1), 빠르게 뻗어나가는 건 (3)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림과 속도감이라니, 추상적으로 느껴지지만 같은 길을 평온하고 안온한 느낌으로 표현할지 아니면 활동적이고 현대적인 느낌으로 표현할지의 차이를 만드는 것이죠.

(1)~(3) Claude Monet






쉽게 좋은 구성을 만드는 방법이 있을까요?

(1)과 (2)는 황금비를 그린 그림입니다. 다들 한 번 쯤은 배워보셨겠죠? 인간이 아름다움을 느끼는 비례로 공식화 되어 있는 거라, 화면을 구성할 때 황금비를 계산해가며 그릴 수도 있습니다… . 아주 정성들인 한 장면을 만들 때에는 가능하겠지만, 바쁜 작업 일정에서는 별로 현실적이지 않죠. 간단한 방법으로는 (3)과 같은 3등분법이 있습니다. 화면을 가장 단순한 홀수로 쪼개는건데요, 교차점에 주제부, 중요한 요소를 배치할 수도 있습니다. 인물사진이라면 인물의 눈을 교차점에 위치시키는 식입니다.


(1), (3) Claude Monet

(2) Katsushika Hokusa



2. 주제 강조

주제를 강조하는 방법은 화면 구성 말고도 많습니다.

주제는 우리가 그림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부분이니만큼 자연히 눈이 가는 소재를 다루겠지만, 의도적으로도 밀도있고 선명하게 표현해 전체 그림에서 무게감을 실어줄 수도 있습니다. 보는 사람에게 집중해야할 정보임을 알게 하죠.


(1), (2) Claude Monet


편의 상 주제부라고 했지만, 화면 구성을 쌓는 큰 획들이나 배경의 분위기를 결정하는 요소들 같이 우리가 두드러지게 드러내고 싶은 것들이라면 무엇이든 선의 밀도(묘사의 정도), 명암과 색상의 대조, 높은 채도, 질감의 광택 등을 신경 써 조절하여 강조할 수 있습니다. (1)에서 인물들, 들녁의 꽃들, 지평선 짙은 숲이 만드는 스카이라인 같이요.








강조하고 싶은 부분만 갑자기 눈에 띄면 전체적인 균형이 깨지지는 않을까요? 강조의 정도에 중간지대를 둔다면 어디가 되어야 할까요? 주제부 바깥은 어떻게 시각적인 리듬을 살릴 수 있을까요?

(1) Claude Monet

(2) Camille Pissarro


어떤 그림이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주제부의 밀도가 자연스럽게 주변으로 퍼져나가게끔 하는 전략으로 (1)과 같이 주제부를 가운데에 둔 십자 영역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시선이 종횡 흐름을 타고 화면 전체로 확장되면서도, 주제부의 힘을 잃지 않게 하죠.


(2)는 화면 중앙부의 들판에 높은 채도·명도·밀도로 시선을 모았다가 주변으로 시야가 확장되는 구조의 그림인데요, 다른 모양의 다각형을 배치한 구성으로 생동감 있는 리듬을 만들고 있습니다.




3. 시선 유도

어떤 그림들을 무심코 바라보면 자연히 시선이 흘러가는 방향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시선, 의식의 흐름을 의도적으로 유도할 수도 있습니다.


(1)~(3) Claude Monet


(4)Wes Anderson





1점투시원근이라고 부르는 구성에서는 투시선들을 따라 시선이 모이죠(1), (2). 강한 선이 화면 둘레에 놓이면 시선이 반사됩니다(3).


곡선 모양의 반사판이라면 시선이 곡선 안쪽으로 모이는 효과가 극대화되구요(4). 이 위치에 우리가 표현하고 싶은 주제를 배치하는 게 좋겠죠.


보다 직설적인 장치를 통해 시선을 유도할 수도 있습니다.고전적인 예술, 특히 종교화에서 많이 쓰는 방법입니다. (5)에서 사람들과 손짓은 우리 눈길을 성모마리아와 예수에게 강하게 고정시킵니다.




(5) Giotto di Bondonet











주제부가 중요하다고 해서 영영 주제부만 뜯어보게 할 수는 없습니다. 전체 그림이 담고 있는 분위기나 다른 정보도 차례차례 읽혀야겠죠. 이 시선의 차례를 우리가 의도적으로 정할 수 있을까요? 시선의 길이 어떻게 있을 때 좋은 효과를 만들 수 있을까요?


(1)~(3) Claude Monet


(1)을 분석하면, 밀도와 색 대비가 만들어낸 큰 선이 화면을 크게 횡단하는 지그재그를 그리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림을 오래 보게끔 시선의 순서를 돌아가게 만드는 겁니다. (1)만큼 선이 직설적으로 표현되어 있지 않아도, (2)와 (3)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1),(2)모아나

(3)하울의 움직이는 성


상업 일러스트에서는 이러한 전략이 더 명료하게 등장하고는 합니다. 아무래도 시선을 사로잡는 효과적인 방법이 더 필요한 분야이기 때문이죠. 만화영화계 거장들이 디렉팅 했을 위의 세 그림에서는 화면을 크게 돌거나 지그재그로 휘젓는 선들이 주제들을 연결하고 있습니다. 선이 마지막 변곡한 후에 화면 밖으로 뻗어나가지 않도록 반사판 역할을 하는 요소들을 배치하는 것도 중요한 전략입니다.



(1)천공의 성 라퓨타


이렇게 길게 화면을 누비는 구성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 물리적으로 눈이 머무르는 시간을 늘리는 것 뿐 아니라 즐길 거리를 부드럽게 꿰는 코스를 준비해줍니다. 무의식 중에 따라오며 음미할 수 있는 그림으로 만들어주는 것이죠.






* 2편에서 계속, 2편에서는 원근과 톤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 로호의 배경 일러스트 메이킹


위 내용의 상당 부분은 이 책에 수록되어 있으며, MMS 내용을 구성하는데에도 많이 참고했다. 게임 배경 일러스트에 관한 책이라 HLD와는 거리가 약간 있는 분야의 책이지만, 오늘 내용을 흥미롭게 본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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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19일 업데이트됨

*이 글을 69번째 304낭독회에서 낭독되었습니다. 2014년 9월 광화문에서 시작된 304 낭독회는 세월호에서 돌아오지 못한 304명을 기억하기 위해 시민과 작가들이 함께 만들어 나가는 낭독회입니다. 낭독회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관련링크 : https://304recital.tumblr.com/ )




눈에 띄지 않는 것들의 아름다움과 신비. 이를테면 한기 서린 곳을 덥히는 작은 풀의 비밀이나 어린 시절의 꿈 같은 것. 마음이나 영혼이라고 불리는 것. 이런 것들에 대한 나의 사랑과 믿음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나의 가치관과 삶의 목표를 결정해왔다. 머리가 굵어질 즈음엔 이 소중한 것들이 잊혀지지 않도록, 세상을 더 아름다운 곳으로 바꾸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문학선생님께 나의 생각을 말씀 드렸더니, 선생님은 세상을 더 아름다운 곳으로 바꾸는 것은 세상의 아름다움을 긍정하는 마음일지도 모르겠다고 답했다. 선생님의 말대로, 세상엔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이 아름다운 일들이 밤하늘의 빛점처럼 많았지만, 우리가 영혼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을 무색하게 하는 크고 작은 비극도 그만큼이나 많았다.

그 해 4월, 나는 군대에 있었다. 모처럼 쉬는 날이었고 티비를 틀어둔 채 방을 청소하고 있었다. 커다란 배가 침몰되었다는 말을 들었고, 전원이 구조되었다는 소식과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소식도 들었다. 자리에 앉아 뉴스를 보며 울었던 것이 기억난다. 그 날 이후로도 나는 자주 울었고, 그래도 살아야 할 날들엔 작고 노란 리본이 대신 울어주기도 했으며, 무력하다고 느껴질 땐 다른 사람의 손을 잡고 함께 울기도 했다. 그리고 어떤 날엔 울기를 거부하는 사람과 우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 함께 우는 법을 모르는 사람들을 보았다. 자식을 잃고 먹기를 거부하는 사람 앞에서 폭식하는 악마와, 우는 것도 우는 사람도 지긋지긋하니 그만 정리하자는 무감한 이웃들도 보았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은 멈추지 않고, 모독과 무관심 속에 부숴진 존재들은 어딘가에서 무력하게 사라진다. 작고 여린 것들이 쉬이 잊혀지는 우리들의 쓸쓸한 시대. 하이데거는 시인의 사명이란 곧, 이 시대에 사라진 신적인 것의 자취를 찾고 그것이 머물 곳을 준비하는 일이라고 하였다.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자리할 ‘장소’를 마련하는 일. 땅이 간직한 기억들을 모아 오늘의 순간으로 이어주고, 시간이 남기는 변화를 기록할 공간을 준비하는 조경가[1]의 일은 하이데거가 말하는 시인의 사명과 크게 다르지 않다.

건축가 아돌프 로스는 건축 가운데서 오로지 묘와 기념비만이 예술에 속하며 일상에서 사용되는 모든 건축은 예술의 영역에서 쫓겨나야 한다고 말했다. 먼저 떠나 보낸 이를 묻고 온 곳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시적인 순간과 마주칠 수 있기 때문에 이 말의 반은 틀렸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몸은 유한하고 기억과 기억을 담은 사물들은 시간을 따라 점점 바래진다. 힘이 있는 자들은 여린 기억들을 자신들에게 더 유리한 방향으로 이용하기 위해 왜곡하고 편집한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그곳에 존재함으로써 떠난 이들의 부재를 증명하는 기억의 공간은 조경가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슬프고 따뜻하며 정의로운 약속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 나라에 만들어진 기억의 공간은 상처받은 영혼들이 자리하기엔 너무도 차갑다. 설계자만이 이해하는 고상한 단어들로 구성된 기념비는 영혼이 전하는 말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감정으로 번역해주지 않으며, 공원 구석에 버려져[2] 오직 선거기간에만 정치인들로 북적 인다. 어떤 기억들은 그마저도 없으며, 기억되기를 거부당해 잊혀진다.[3] 비극은 끝날 리 없다. 멀리 떠난 혼들이 돌아와 상처를 씻고 남은 이들의 마음을 돌볼 수 있는 따뜻한 자리가 필요하다. 우리가 영혼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긍정할 수 있는 공간이 이 사회에 필요하다.

세상은 갈수록 이해하기 힘들어지고, 사회의 낮은 곳에 있는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은 다짐을 무력하게 한다. 살아있기에 죄인일 수 밖에 없는 우리는 매일 후회하고 반성하고, 쓰고 그릴 뿐이다. 그런다고 이 비극이 멈출 리 없다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 선생님의 말처럼, 따뜻한 상상과 기억의 말들이 하나 둘 모여 우리가 서로 안의 아름다움을 긍정하고, 어두운 곳에 빠진 진실된 기억들이 세월을 넘어 기적처럼 떠오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희망이 없다고 말하기엔 아직 이르다. 세상에는, 우리 안에는 아직 아름다운 것들이 남아 있다.




[1] 조경(造景)하는 사람. (사)한국조경학회에서 제정한 한국조경헌장에서 정의하는 조경은 아름답고 유용하고 건강한 환경을 형성하기 위해 인문적‧과학적 지식을 응용하여 토지와 경관을 계획‧설계‧조성‧관리하는 문화적 행위이다. [2] KAL기 참사 위령탑은 사건과 관계없는 양재시민의 숲에, 비극과 연결 짓기 어려운 추상적인 형태로 조성되어있다. 성수대교 참사 기념탑은 사람이 걸어서는 접근할 수 없는 교통섬에 덩그러니 놓여있다. [3]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자리엔 아파트가 세워졌다. 그 곳에는 참사를 기억하는 표지석 조차 없다.대구 지하철 참사를 기억하기 위한 시민안전테마파크 건립사업은 인근 주민들의 큰 반발을 샀다. 주민들은 희생자의 이름이 적힌 추모비는 ‘위락지구’인 팔공산자연공원과 어울리지 않다고 주장하며 추모행사가 일어날 잔디광장 조성 역시 반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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