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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 이 글은 2020.06.01 월요일 아침에 진행한 MMS 에 대한 (때늦은) 기록, 요약 및 보완이다.




놀이터를 생각해볼 때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정형화된 이미지가 있다. 바로 몇몇 개의 플랫폼과 그것들을 넘나들 수 있는 미끄럼틀, 계단, 그리고 그물망들. 말 그대로 여러 놀이 아이템들을 조합해 붙인 ‘조합놀이대’이다. 8-90년대에 많이 만들어진 플라스틱 조합놀이대가 있는가 하면 요즘에는 마치 동화 속에서 튀어나오기라도 한 듯한 양철 나무꾼의 놀이대, 금방이라도 움직일 것 같은 공룡 모양의 놀이대 등 솔직히 우리도 당장 뛰어들고 싶은 놀이대가 무궁무진하게 만들어진다.



조합놀이대 = 놀이터?


조합놀이대는 점점 어메이징하고 스펙타클해지고 있다. 이 와중에 우리에게는 조합놀이대가 있는 곳이 곧 놀이터이고 놀이터라면 마땅히 조합놀이대가 있어야 하는 곳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이렇게 놀이대의 형태에 주목하고 열광하는 순간, 한 가지 간과되는 것이 있다. 바로 놀이‘터’이다. 우리들의 놀이를 담아내야 할 땅은 예나 지금이나, 어떤 스토리를 담거나 매우 평탄하기만 하다.


놀이터를 설계한다면 놀이대 파사드 디자인에 앞서 여기서 어떻게 놀 수 있을지, 여기에 어떤 놀이들이 생기면 좋을지에 대한 고민, 즉 놂의 디자인이 먼저 되어야 한다. 그것에 따라 ‘터’는 풀이나 숲으로 뒤덮일 수도 있고 울퉁불퉁한 레고(LEGO)판이 될 수도 있다.



놀이의 공간과 재료를 제공하되 놀이의 방식을 제한하지 않는 놀이터


놀이터의 많은 경우 놀이의 방식를 제한해 왔다. 미끄럼틀에서만 미끄러져야 하고, 그물에만 매달려야 한다. (안 그러면 큰일나는 줄 안다.) 놀이시설 안전기준만 살펴봐도 위험하려는 자와 막으려는 자의 끝없는 고민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하지만 이것이 현장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점은 어릴 적 경험을 조금만 기억해봐도 명확해진다. 미끄럼틀을 거슬러 오르기도 하고 난간을 타고 아슬하게 미끄러진다. 안전을 위해 위험한 행동을 막는 것만이 놀이터의 답은 아니다.


놀이터와 위험, 안전에 관한 흥미로운 영상을 mms에서 소개했다.

Why safe playground aren't great for kids


영상에서도 잠시 소개된 조경가 Marjory Allen의 이야기는 그의 책 'PLANNING FOR PLAY' 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그의 놀이터는 아이들이 마치 공사장에 내던져진 듯한 경악스러운 모습으로 다가오기도 하는데, 이용자 스스로 놀이의 방식을 결정하고 재료들을 모아 직접 미끄럼틀이나 짚라인을 만들어 체험하고 친구들과 공유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놀이터가 가지는 놀이의 방식은 매번 달라질 수 있게 된다. 놀이 방식의 변화는 오히려 위험에 대한 새로운 자극을 주기도 하고 이용자 자신에 맞춰 놀이를 만들기 때문에 어떠한 신체적 한계로 인해 다가올 공간적 차별도 덜할 수 있다.

Marjory Allen의 Junkyard Playground.

image source: https://www.theguardian.com/cities/2017/jul/

19/junk-play-urban-adventure-playgrounds-austerity-london



안전기준이 너무 빡빡하다거나 창의력 증진 같은 교육적 의미를 들이밀려는 것은 아니다. 놀이터가 놀이터답게 재밌게 놀 수 있는 근본적인 접근이 먼저 되었으면 좋겠다. 도시 속 노는 공간을 놀이터로 축소시켜온 만큼 여기서는 원하는 대로 놀 수 있다는 메시지, 그리고 스스로 놀이를 찾는 경험을 가질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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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LD, ADVOCACY & INNOVATION BY DESIGN 은 <환경과 조경> 2019년 3월호, 설계사무소 리포트 특집에 회사 정체성을 한마디로 표현하는 문구를 정하기 위해 내부 투표를 하는 과정에서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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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LD is a creative design practice founded by Hoyoung Lee and Haein Lee. For spatial problems and challenges, HLD’s design seek to provide “critical interventions”, which we define as a set of actions and design devices, both physical and operational, that enables positive changes by finding missing links between the place’s current state and its full potential. Redefining the given question to find “what would be critical to impact the lives of people who inhabit the place?” is always the beginning of our design quest. We refrain from providing design services for superficial aesthetic improvement, embellishments or stylizing. While armored with specialized knowledge and skills as landscape architect and with affection toward natural beauty and respect for the site’s urban and ecological context, HLD’s critical interventions are not confined to landscape architecture’s conventional realm, but rather encompasses diverse fields of design for their creative thinking, utilizes diverse fields of analysis for their practical insights, and materializes ideas through various scales from tactile expression to regional visioning. Big or small, HLD values a humble yet fundamental approach that is environmentally and socially responsible.

HLD는 이호영과 이해인이 설립한 창의적 디자인 회사다. HLD의 디자인은 공간적 문제와 도전과제에 대해 “핵심적 개입”을 제공한다. 핵심적 개입이란 물리적 또는 운영적 측면에서 대상지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과 현 상태 사이의 빠진 고리를 찾아냄으로써 긍정적인 변화를 가능케 하는 조치나 설계적 장치를 의미한다. “이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주기 위해 가장 핵심적인 것은 무엇인가?”라고 질문하는 것으로부터 우리의 설계는 시작된다. 우리는 피상적인 외관 개선이나 장식, 스타일 입히기를 지양한다. HLD의 핵심적 개입은 전통적인 조경설계의 범위에 국한되지 않으며, 다양한 분야의 분석을 활용한다. 조경가의 전문적 지식과 기술,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애정, 그리고 대상지의 맥락에 대한 존중을 통해 촉각적 표현부터 지역적 비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케일의 아이디어를 구현한다. HLD는 모든 스케일의 프로젝트에서 환경적, 사회적으로 책임감 있는, 근본적 접근을 추구한다.



HLD 홈페이지에 쓰인 소개문이다. 앞으로 몇 차례 개정을 거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다시 보아도 이 글은 진심이다. 우리가 하는 설계가‘좀 더 고급스러운 정원을 갖고 싶어요 (남들이 좋다고 할 만한 정원 만들어주세요)’ 또는 ‘나 땅 좀 있는데 뭐 할지 모르겠어요 (지금은 뭘 원하는지 몰라도 내가 싫어할만한 것은 하지 마세요)’같은 사소한 고민(아래 그림 참조)에 답하는 것이 아니라, 크든 작든 좀 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었다. 대상지가 제 기능을 다 하지 못하고 있는 근본적 이유가 있을 텐데, 일을 의뢰하는 사람이나 공정을 관리하는 사람의 의도는 그와 무관한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그래서 주어진 문제를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우리 나름대로 문제를 다시 정의하고 문제의식을 발주처와 공유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간혹 설득이 안되면 이를 숨겨진 제2의 아젠다로라도 꿋꿋이 지켜나가기 위한 요령도 필요하다.


그림 1 1. 무한도전에서 배우 김혜자씨가 해외 봉사를 나가 그 곳의 참혹한 현장을 본 뒤, 우리네가 한국에서 지지고 볶는 일상의 갈등에 대해 한 말 (이 장면을 본 뒤, 나는 내가 하는 고민이 쓸데없는 것이 아닌지 더 자주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가 하는 일의 본질을 핵심적 개입 (critical intervention)이라 표현했는데, 핵심적 개임, critical intervention이라는 말에서 critical은 ‘비판적인’이란 뜻이 아니라 ‘없어서는 안 될’, ‘결정적인’의 뜻이다. 이 결정적인 한 방은 처음에는 잘 안 보일지라도 일단 찾고 보면 너무나 필수불가결하고 필연적인 것일 때가 많다. YISS 프로젝트는 원래 교문 밖에서도 보이는 보강토옹벽의 경관을 개선하자는 정도의 목적에서 생겨난 프로젝트다. 실제 학교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공간을 만들자는 것이 아니라 방문자나 지나가는 사람 보라고 교문을 새로 짓고 겉치장을 한다고 해서 뭐가 얼마나 달라질까? 이 학교는 과연 학교다운 공간을 갖고 있는가? 교문에서 언덕 위 본동 건물까지 보도는 그저 차도를 따라가고 있을 뿐이고, 그 옆 경사녹지는 온양석 조경석 쌓기로 덕지덕지 마무리 되어있었다. 걸어서 통학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지만, 참 매력 없는 등굣길이다. 사실 보기 싫은 보강토 옹벽이라고 규정되었던‘문제’의 핵심은 옹벽 자체가 아니라 대상지 주변의 맥락과 연관성도 없으면서 학교다운 공간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경사 처리, 그리고 아이들에게 필요한 공간이 뭔지에 대한 진지한 고려가 부족했던 점에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보도를 차도로부터 분리해서 숲 안으로 집어넣고, 동선을 따라 기존 캠퍼스에 없던 사회적 공간(스탠드)과 지름길(계단)을 설계했고, 프로젝트의 제목은 <In the Forest>라 지었다.

창원대상공원 설계에서 핵심적 개입은 도시와 공원의 연결(link)이다. 복잡계 네트워크 이론에 따르면 하나의 링크가 생겨나면, 앵커, 노드, 허브가 발생하면서 네트워크가 구축된다. 그만큼 링크가 하나라도 있느냐 없느냐는 중요하다. 창원대상공원처럼 우리나라 도시 안에 남아있는 공원 중에는 접근이 어려운 언덕 지형이 많다. 언덕인 덕분에 남아있는 것이기는 하나, 도시와의 링크가 제대로 구축되지 않아 주변과 함께 기능하지 못하고 섬처럼 존재해 그 효용이 떨어진다. 이 프로젝트는 강력하지만 최소한의 영역(footprint)을 갖는 접점부를 마련해 공원이 도시 네트워크 조직에 들어올 수 있도록 해주는 것에 집중하고, 프로그램 박물관처럼 수십개 야외공간 채워넣기는 하지 않았다.

장소(place)가 가진 역사성이나 맥락은 그 자체로 대체가 불가능(irreplaceable)하다. 그래서 많은 경우 우리의 핵심적 개입은 여기에서 기인한다. 낙원상가 옥상공간에 대한 제안에서 삼일대로나 낙원상가가 생기기 이전, 가로와 골목 공간으로서 이 공간이 가지고 있던 공공성을 회복하기 위해서 지적도에 남아있는 예전 도시 조직의 흔적을 시각화하고 이를 역사 정원 공간으로 구현해 낸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홍대복합역사 AK숲길 프로젝트에서 경의선 숲길의 한 연장으로서 철길의 모티브를 이어나간 것, 베트남 호치민의 호텔 프로젝트에서 다랑논의 경관을 재해석한 것도 마찬가지다.

핵심적 개입은 좀 더 소소하게도 일어난다. 기아 비트 360과 같이 상업적인 전시 공간에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아젠다는 숨어있지 않다. 좁고 긴 건물 뒤 숨겨진 자투리 공간 안에서 문 밖으로 나오면 갑자기‘아웃도어’, ‘오프로드’, ‘깊은 숲’을 느낄 수 있어야 된다는 과제가 주어졌을 때, 기존 안처럼 트리하우스를 짓고 텐트를 펼쳐놓는 등 아이템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몰입되는(immersive) 경험을 전달하는 설계적 장치들을 마련해야한다고 방향을 정한 것이 가장 중요했다. 공간을 깊게, 또 하나로 연속적으로 느끼게 하기 위해서 공간 중심부의 레벨을 500mm 낮춘 것, 섬세한 꽃꽂이가 아니라 다간형 자작나무를 적절히 섞어 좁은 공간에서 최대한 깊은 공간을 연출한 것, 질감의 강한 대비를 이용해 물성에 관심 갖도록 유도한 것, 이 세 가지가 사소하고 부차적인 도구(gadget)들을 다 버리고 남은 장치들이다.

핵심적 개입이라는 것이 사실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해서, 지극히 당연한 걸 유난스럽게 이름까지 지어준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쓸데없는 데에 우리의 노력을 헛되이 낭비하지 않으려는 자정장치로서 (동시에 보호장치로서) 이 개념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렇게 해도 되고, 저렇게 해도 되는데 결정하는 사람의 선호도에 따라 결정하면 되는 대안이 나왔다고하면, 아마 우리가 문제의 본질을 재정의하고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데 성공하지 못해서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설계를 하는 건 정말 곤욕이다. 결정권자의 마음을 모르는 담당자의 노파심 섞인 요청에 안내판 위에 시계가 이렇게 박힐지, 저렇게 박힐지에 대한 24가지 대안을 만들고 있자면, 내가 왜 설계를 하고 있나 자괴감이 들 수도 있다.

반면 본질에 충실할 수 있던 프로젝트는 살인적 스케줄과 작업량에 고생을 했더라도 조금은 그 안에서 느끼는 러너스하이 (runner’s high)같은 도취감과 보람을 찾을 수 있다. 인건이 기정의 숨겨지고 잊혀진 이야기를 대상지의 지질, 경관, 문화 사이의 연결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공원 설계의 중심에 놓고, 이 곳의 기억이 지름작지왓에서 작박담으로 이어지는 내러티브가 되도록 설계한 대포중문 주상절리대 경관설계 제출안 <인건이 기정의 기억과 조망>은 껍데기를 걷어내고, 그 장소의 생리를 다시 살려주는 것 외의 개입은 최소화했다. 공모전을 치른 뒤 후유증은 있었지만, 후회는 남지 않는 프로젝트다.

물론 핵심문제 빼고 나머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서두에 언급했듯 사람마다 생각이 달라서, 핵심적 개입이 세상 빛을 보기 위해서는 설득력과 전달력이 필요하고, 여기에는 디자인의 창의성, 독창성, 세련됨, 아름다움, 기능성이 다 필요하다. 그래서 좋은 설계를 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이걸 다 잘하기도 어려운데, 요즘은 근본적인 대책을 위해서 조경 분야 밖으로 범위를 넓혀야하는 일이 많다. 요즘과 같은 미세먼지가 많은 날씨에서는 아무리 아름답고 좋은 공원이 있다고 한들 그 곳을 방문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평택석정공원에서 미세먼지를 저감할 있는 숲의 두께, 수종, 층위 등 분석하여 공간에 적용하고 미스트장치 등을 통해 국지적으로 미세먼지를 차단할 수 있는 전략을 제시했지만, 고민이 여기서 멈추면 핵심적 개입에 이르지 못할 수 있다. 줌인 줌아웃을 자유자재로 하면서 다양한 스케일의 문제를 다룬다는 것이 조경가로서 우리가 가진 강점인데, 불필요한 문제에 집중하다가는 사회의 미래를 고민하는 중대한 문제는 외주화하고 정작 전문가인 우리는 테이블에서 목소리를 잃기 쉽다. 이미 많이 일어나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여러모로 근육을 키우고, 용기를 내고, 참여를 해야한다는 생각이 든다.

젊은 조경가상 시상식에서 ‘이들은 과연 젊은가?’라는 질문이 있었다. 둘이 합해 (만)78세, 평균나이 (만)39세인 우리는 마냥 젊게 느껴지는 나이가 아니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젊다고 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에게 아직 한참 배움의 길이 남아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기득권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세상에 대해 허무주의적, 냉소적 태도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그렇다고해서 열심히 많이 해보면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말에도 공감하지 않는다. 본질에 대해 진정성 있는 탐구와 시도를 함에도 불구하고 일를 그르치기는 어렵다는 것 정도를 믿는다.

하, 말하고 나니 멋있다. 그게 문제다. 둘이 집에 가면서 했던 대화가 갑자기 생각났다. 우리 왜 이렇게 허구헌 날 사서 고생이냐고 한 명이 물었고, 다른 한명이 대답했다. 내면의 후카시 때문이라고.

haein.lee@hldgroup.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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