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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 laK 환경과 조경 2024년 2월호 '나의 식물에게' 기획의 일부로 실린 글을 다듬었다.


조경이 식물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고, 조경에 식물이 필수적인 것도 아니다. 조경가가 다루는 공간이 자연을 배제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보니 으레 자연의 한 요소로 식물을 다루게 되는 것일 텐데, 조경가를 식물전문가로 바라보는 시선이 종종 갑갑하다.

다른 한 편으로는, 식물을 다룬다는 점이 그래도 여러 공간설계 분야 중에서도 조경을 특별하게 만드는 게 사실이기에, 나를 포함해 꽤 많은 조경가가 식물을 사실 잘 모른다는 점이 종종 불안하다.

식물에 대한 식견이 아주 부족한 사람으로서 ‘나의 식물’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려니 식물 지식, 식재 설계에 대한 노하우를 감히 내놓을 재간은 없어 그저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몇 가지 식물에 대한 기억을 소소하게 써보려고 한다. 객관적이지 못하고 개인적인 선호가 드러나는 점은 양해를 구한다.


1. 찔레(Rosa multiflora)

찔레는 꽤 어렸을 때부터 정확히 이름을 알고 있던 식물이다. 원래 자연에 관심이 많아 농대에 가고 싶었다는 아버지는 관찰력이 좋아서, 과장된 기억이겠지만 운전하고 지나가면서도 ‘저기 대벌레 숨어있다’고 알려주셨던 것 같다. 먹을 것이 넉넉하지 않던 시절에는 이런 것도 먹었다고 알려주셔서, 찔레 껍질을 벗겨 그 속살을 먹어보기도 했다. 목으로 넘길 수는 있다고 하는 게 더 맞을 정도로 맛은 없다. 어쨌든, 먹어본 기억 탓에 이 식물은 꽃이 있어도 없어도 찔레인 것을 늘 알아봤다. 가시가 없는 민찔레도 있다. 탐조하는 사람들에게는 각자 ‘새 관찰에 대한 열정을 불꽃처럼 일으키는 종’을 뜻하는 spark bird라는게 있는데, 나에게는 말하자면 이게 나의 spark plant다.


2. 쇠뜨기 (Equisetum arvense)

‘모두가 말리겠지만 써보고 싶은’ 식물이다. 뱀밥이라고 불리는 생식줄기가 올라올 때는 조금 징그럽게 생겼는데, 녹색의 영양줄기는 질감이 부드럽고 균일해서 들판에 쫙 펼쳐져 있을 때 햇빛을 받는 질감이 꽤 예쁘다. 어릴 때 지나다니면서 보이면 쉽게 끊어지는 게 재밌어서 뚝뚝 끊고 다녔던 풀, 너무 잘 퍼져서인지 대부분 잡초 취급을 받는다. 들판이라 쇠뜨기 심어보면 어떻겠냐, 제안해 본 적이 있는데 비웃음만 사고 끝났다. 검색해 보면 온통 어떻게 없애는지만 나온다.


주암댐 하류 보성강의 쇠뜨기 (뒤로 보이는 꽃은 흰제비꽃으로 추정). 한참 방류할 때는 다른 모습이겠지만, 댐 하류의 평상시 모습은 정말 아름답다. 댐으로 막힌 보성강도 자연하천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한강이나 서울의 지천에서는 볼 수 없는 야생의 역동적인 흔적이 남아있다.


3. 붉나무 (Rhus chinensis)

이름처럼 단풍이 정말 빨갛다. 사실 붉나무를 한국에서 설계에 써 본 적은 없지만, 뉴욕 하이라인에 있는 사촌 격인 Rhus glabra (smooth sumac)의 특성을 좋아해 대체목으로 생각해 두고 있는 식물이다. 너무 붉어서 투명한 느낌이 날 정도로 짙은 단풍이 들기까지 노란색과 주황색으로 거치기도 해서 가을 풍경을 다채롭게 해준다. 붉나무 색은 Rhus glabra만큼의 색이 안 날 수도 있겠지만, 정돈되지 않은 듯 거친 야생의 느낌이 드는 식물이 필요할 때 활용해 볼 계획이다.


갈색, 자주색, 선홍색, 다홍색, 주황색, 레몬색, 개나리색, 연두색, 풀색, 진녹색 등 여러 색이 있는데 유독 수맥의 단풍이 영롱하다. (뉴욕 하이라인)


4.수양버들 (Salix babylonica)

나는 탄천을 따라 자전거로 하천변만을 달려 출근할 수 있는 운 좋은 사람이다. 출근길 구간에도 이 수양버들이 커튼을 드리운 곳이 몇 군데 있다. 아침 해를 받아 투명해진 수양버들 커튼 뒤로 탄천에 꽂혀있는 한 배수구 끝 돌무더기에 앉은 민물가마우지를 찍는 게 일상이 되었다. 봄에 호흡기 질환을 일으킨다고 해서 점점 쓰기를 꺼리는 추세라 물가가 아니면 잘 안 보이긴 하지만, 간혹 도심 한가운데 엉뚱하게 있는 수양버들을 발견하기도 한다. 크기가 좀 크다면 더운 지방의 후추나무(Schinus mole) 같은 느낌도 난다. 가로수나 정원수로 쓰이는 나무의 다양성이 워낙 적어서인지, 이런 엉뚱함이 도시 경관을 다채롭게 하는 것 같다.


배수로 끝에 돌 무더기가 있어 항상 민물가마우지가 여럿 앉아있다. 워낙 키가 커서 자전거로 지나갈 때는 그 키가 다 가늠이 안되는 높은 버드나무가 커튼을 드리우고 있어서, 가깝지만 먼 발치에서 바라보듯 조심히 보게 된다.


5. 뽕나무 (Morus alba)

발주처와 답사를 다닐 때만큼 질문이 두려울 때가 없다. “이 식물 이름이 뭐예요?”. 알면 다행인데, 모르면 대충 학명으로 속명만 말하거나 비슷한 영문 이름으로 얼버무리고 만다. 창피하지 않으려고 평소에 이름 모르는 식물을 보면 ‘모야모’ 앱에 열심히 물어본다. 내가 가장 여러번 같은 나무를 물어보고 또 물어봤던 것이 싸리나무와 뽕나무였다. 사실 뽕나무는 우리가 도시에서 흔히 보는 다른 나무랑 잎부터 꽤 다르게 생겼는데도, 이게 무슨 나무일까 궁금할 때 늘 머릿속에 후보로 잘 떠오르지 않는다. 오디가 열렸다가 그 주변이 다 질퍽하도록 떨어져 있으면 그제야 아 이 나무가 뽕나무였구나 하고 알아본다.

뽕나무는 광장에 심기에 좋지 않다. 아래에는 벤치를 두지 말아야 한다.


6.양버즘나무 (Plantanus occidentalis L.) 또는 단풍버즘나무 (Platanus x acerifolia)

처음 도시설계 스튜디오를 들으면서 가로수를 골라야 하는데 도무지 갈피를 못 잡고 있으니 교수님이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나무라며 추천해 준 London Plane이다. 플라타너스라고하면, 볼품없었던 우리 초등학교, 중학교 운동장이 생각났다. 잎은 너무 크고, 떨어지면 부스러지는 큰 열매, 가끔 같이 떨어졌던 송충이도 싫고, 껍질도 막 벗겨져서 징그럽다고 생각했던 나무인데, Elizabeth Macdonald 교수는 수피와 봄의 잎 색이 밝아 도시 경관을 환하게 만드는 이 나무의 덕목을 칭찬했다.

사소한 대화였지만, 계획 내에서 식물을 생각할 때 내 개인의 단편적 지식이나 한 선입견을 내려놓는 계기가 되었다. 만약 뉴욕 브라이언트 공원의 플라타너스를 먼저 만났다면 나 역시 플라타너스를 가장 좋아했을지 모른다.



나무에 대한 선호에도 어른 입맛 같은 게 있다면 이런 게 아닐까 싶다. 지저분한 수피, 잘못 자란 것 같은 가지들, 마르거나 물든 잎이 섞여 있는 자연스러움이 멋스럽게 보인다. (뉴욕 브라이언트 공원)


7. 미국주엽나무 (Gleditsia triacanthos var. inermis)

Honey Locust라고 불리는 이 나무는 광장에 잘 어울린다. 원래 아까시나무처럼 가시가 무섭게 있는데 가시가 없는 품종이 주로 도시공간에 쓰인다. 공공공간에서 햇빛을 가리는 걸 좋아하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미국은 나무가 있더라도 해가 적절히 들어오는 것을 더 선호하는 탓인지 작은 크기의 잎이 만들어내는 이 나무의 캐노피를 레이스 같다고 (lacey)하며 좋아한다.

우리나라 가을 단풍의 노란색은 주로 은행나무인데, 미국에서는 주로 주엽나무일 때가 많다. 은행나무 노랑보다 조금 더 맑은 색이다. 진녹의 사초 위에 떨어져 있는 잎 색의 대비가 멋있다. 잎의 느낌이 가장 비슷하다고 생각한 건 회화나무지만, 비슷한 용도로 쓰기는 쉽지 않다.


커야지만 멋있는 나무들도 있는데 미국주엽나무는 작아도 시각적인 임팩트가 크다. (미니애폴리스 Walker Art Center)


8. Coast live oak (Quercus agrifolia)

캘리포니아가 원산지인 상록 참나무로, 우리나라에는 없다. UC Berkeley 캠퍼스에서 Redwood (Sequoia sempervirens)와 함께 가장 흔히 보이는 아름드리나무인데, 특히 아래로 납작하고 넓게 드리우는 나무 그늘의 지름이 10~20미터씩 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교수회관 앞 Faculty Glade에는 아름답게 경사져 내려오는 잔디 언덕에 제일 큰 참나무 하나가 있다. 수관폭이 넓어 멀칭이 깔린 면적만도 어마어마하다. 생명다양성재단의 김산하 대표는 숲의 기본 단위를 정하는 기준을 ‘무언가 살기 시작한다면 숲’이라고 하기도 했으니, 이 정도면 나무 한 그루라도 숲이라 할 만하다.

Glade라는 단어도 여기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Glade는 ‘나무로 둘러싸인 열린 공간’이라고 하는데, 사전의 설명에 따르면 특히 햇빛이 드는 그러한 공간을 지칭한다고 한다. 참나무의 견고한 그늘 옆이라 그런지, 구릉의 잔디가 유난히 밝고 쾌적하게 보인다.



9.유칼립투스, Tasmanian Blue Gum (Eucalyptus globulus)

조경 공부를 미국에서 시작하게 되어, 식물에 대한 기억을 더듬다 보니 미국 이야기가 많아졌다. 잎이 늘어진 나무로는 대표적으로 유칼립투스가 있다. 원래 호주가 원산지인 이 나무는 캘리포니아 전역에 널리 퍼져있다. 호주와 캘리포니아 큰 산불의 원인이기도 하다.

80년 넘는 역사를 갖고 있는 여름 음악 축제로 유명한 샌프란시스코의 스턴그로브 공원(Stern Grove)은 유칼립투스 숲이 오목한 지형을 둘러싸고 있는 천연의 극장이다. 유칼립투스는 잎에 바람만 불어도 에센셜 오일에서 나는 듯한 싱그러운 풋내를 내는데, 와인 한잔에 공연을 보고 있으면 술과 나무향, 분위기에 절로 몽환이 느껴진다. 장미, 금목서, 히노키 등 매혹적인 식물이 많지만, 샌프란시스코의 짙은 안개가 깔아준 유칼립투스의 향이 숲에 빠져드는 듯한 가장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스턴그로브 여름 축제 중 샌프란시스코 발레단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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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수정일: 2023년 3월 12일



NOTE: 인터넷 환경과 조경 [조경논단]에 실린 글을 다듬었다.


이 글은 <기묘한 이야기>에서 이어진다. 지난 글에서는 공원이 조경가가 하는 과업 목록에 없는 것, 자기 임기 중에는 번거로운 일이 안 일어났으면 하는 발주처, 조경 면허는 있지만, 조경 부서는 없다고 하는 회사, 미필적 계약 연장과 이로 인한 피해, 소규모 회사에 더 불리해진 가산점 기준, 말아먹어도 점수가 되는 실적, 아무리 잘해도 싼 가격을 이길 수 없는 평가제도 등을 들여다보았다. 이상한 일을 그저 이상하다고 말하는 것은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 하지만 만약 여기서 끝난다면 자칫 이를 그저 그런 푸념으로 치부되어 버릴 수도 있기에,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몇 가지를 이야기하려고 한다.


#1. 너는 왜 계속 손님이냐, 돈 내고 가입하고 주인 하라


조경 분야에 이미 많은 단체와 조직이 만들어져 있는데 아마 대부분 어떤 단체가 있는지 구체적으로는 잘 모르거나, 안다 해도 이 단체들의 활동을 탐탁지 않게 여길 것이다. 사실 ‘협회’가 정말 잘 돌아가는 경우는 조경이나 한국이라는 전제 조건을 떠나서도 매우 드문 일인 듯하다. 협회와 같은 조직은 공동의 이익을 위해 뭉치기는 했지만, 참여나 활동에 강제성을 갖지 않기 때문에, 조직의 태생부터가 적극적 참여에 대한 희망을 품기 어려울 수 있다. 즉 손님처럼 앉아 있고, 방관자처럼 바라보기만 하는 사람들이 구성원의 절대다수를 이루는 가운데, 늘 나서는 똑같은 사람 (STP, same ten people)의 목소리에 휩쓸리기 쉬운 구조라는 것이다. 그소


그렇다고 해서 극적인 구성원에게 그저 뭐라고만 할 수는 없다. 먹고살기도 바쁘다면란 정치 활동에 참여하기란 쉽지 않다. 또, 너무 순수한 사람은 부조리와 불합리, 불공정을 보면서 더 빠르게 지쳐나간다. 애써 나서보는 사람들도, 방관하는 사람들이 쉽게 내뱉는 비판이나 고질적인 무관심 속에서 겨우 자리만 지키는 경우가 많다.

나는 내가 정말 별로 탐탁지 않아 하는 어느 정당에 몇 년 전부터 꼬박꼬박 당비를 납부하는 중이다. 이는 그들이 하는 모든 일에 응원하기 위함이 아닌, 내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작은 창구를 만들어 놓기 위해서다. 대표 선출이나 주요한 정책 방향에 대해 권리 당원으로서의 투표권을 행사한다. 지방자치단체 후보로 어떤 이가 나왔을 때, 후보의 장단점을 몰라 연필 굴려 투표해 본 적이 있나? 그럴 때 이 후보는 누가 경선에서 뽑은 것인가, 내가 그때 경선에서 더 좋은 사람을 뽑을 수는 없었을까 궁금해한 적이 있는가? 물론 경선 후보를 고를 때의 고민도 만만치는 않다. 하지만 평소에 정치적 의견이라고 내 본 적도없으면서 찍을 사람 없다고 한탄하는 얄팍함에서는 조금 벗어날 수 있고, 내가 속한 정당이 허튼짓할 때 탈퇴나 후원 중단이라는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다면 나는 월 몇천 원의 당비를 내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학회도 있고, 협회도 있고, 조경이상도 있고, 이제 곧 조경가협회가 발족한다고 한다. 조경계가 지닌 문제점을 이야기하면서 대체 이런 단체는 뭘 하고 있는지 궁금해한 적이 있는가? 지난 회장을 옆에서 잘 보필한 사람이 차기 회장으로 내정되는 방식이 이상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그러다 보면 역량이 턱없이 부족한 사람이 단체의 회장을 맡기도 한다는 걸 알고 있는가? 누가 왜 회장이 되고, 누가 임원으로서 어디서 무엇을 하고, 이 단체가 조경이라는 이름으로 어디서 어떻게 입장을 표명하는지에 입김(say)을 갖고 싶다면, 단체에 회비를 내고 가입해 주인이 되시라. 밖에서 궁금해만 하거나 뒷짐 지고 훈수를 두는 것은 참여가 아님은 물론이고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2. 기다릴 거 없다. 목소리 내기


새로운 단체가 생긴다고 해서 갑자기 조경계에 여러 문제를 한꺼번에 다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어떤 상황이 발생하면서 정리되기를 기다리기보다는 그냥 그때그때 필요한 일을 해야 한다.

공공 프로젝트는 입찰공고 이전에 사전규격공고 기간이 있다. 얼마 전 ○○시에서 낸 한 기본계획 용역의 사전규격공고을 보니 과업내용서는 있는데 입찰 참가 자격이나 평가 기준을 알 수 있는 제안요청서가 없었다. 개인적으로 이 입찰에 참여하려던 것은 아니지만 이런 사전규격공고는 크게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 나라장터에 입찰참가자격 등을 공개해달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며칠 뒤 해당 부서에서 전화가 와서 이 입찰은 ‘지역으로 참가를 제한할 것’이라는 답변을 해왔다. 원래 질문의 대답인 어느 전문분야가 참여할 수 있는지는 말하지 않고 지역업체로 한정한다는 동문서답의 대답은 마치 ‘네가 상관할 바 아니니 관심 끄시오’라는 답변처럼 들렸다.

이 용역은 선형공원 기본계획이다. 결국 측량 및 도로 분야 업체를 대상으로 최종 공고가 나왔다.

사전규격공고에 올리는 의견 중 요즘 가장 많이 보이는 것은 공공측량 제도 이행 절차 기준 명기 요청 의견서다. 관련 있는 거의 모든 용역의 사전공고에 같은 의견서를 공간정보품질관리원의 이름으로 제시하고 있다. 공고 내용 중 공공측량 관련 법령이 요구하는 절차를 준수하지 않은 부분이 있는지, 법령 근거가 무엇인지, 반영 예시와 함께 제시하고 있다. 이 단체가 제시한 의견이 전부 옳다거나 이에 따른 조치가 충분한지는 잘 모르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해당 산업의 전문성이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애를 쓰고 있다는 점은 알 수 있다. 조경협회나 조경가협회에서도 하루빨리 이러한 노력을 공식적으로 시작하기를 기대해본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협회 차원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므로, 공식적인 방편이 마련되기 전이라도 개별적으로 누구나 먼저 해도 된다.


#3. 발주처랑 같이 일하기

Michael Van Valkenburgh의 책 <Designing A Garden>을 보면 맨 첫 부분(p.16)에 발주처(Anne Hawley, 미술관 관장)가 Michael Van Valkenburgh에게 보낸 편지가 나온다.





이 편지가 신선하게 느껴진 것은 발주처가 설계자를 대하는 태도나 매너, 유려한 문장 때문만은 아니다. 여기에는 발주처가 이 공간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한 생각이 꽤 구체적으로 적혀있다. “무엇을 만드시오, 어떤 기능을 담으시오, 이런 부분을 고려하시오.” 등의 기술적 측면보다는 실제 이 공간을 방문하게 될 사람들에게 어떤 경험을 주었으면 좋겠는지에 대한 철학이 담겨있다. Anne Hawley의 편지를 읽고 함께 대상지를 둘러본 Michael Van Valkenburgh는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훔치고 그들에게 놀라움을 선사하는 “선물”과 같은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발주처의 바람을 조경을 통해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를 고민했고, Monk’s Garden이 ‘건물 안에서 일어나는 집중으로부터의 해방’, ‘바깥을 거닐도록 하는 재밌는 초대’가 되도록 설계했다고 밝히고 있다.

물론 발주자가 될 수 있는 위치는 다양해서, 소유자, 발주자, 관리자, 사용자가 다 다르기도 하고, 이 중 어떤 발주자와 일하고 있느냐에 따라 발주자와 나눌 수 있는 대화의 범위는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 자주 ‘숙제 검사자’형 발주자를 만나게 된다. 숙제 검사를 통해 틀린 것을 지적하고 이에 대한 ‘꾸중’을 하는 것은 잘하는데 그래서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에 대한 생각은 없는 경우도 많다. 그나마 자기가 낸 숙제가 아닌 경우가 많아서 숙제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도 하며, 숙제를 잘했다고 평가하는 기준이 그 프로젝트를 위한 최선의 안이냐 보다는 ‘나에게 숙제를 내준 사람’에 해당하는 발주처 내 상사에게 꾸중을 덜 듣거나 책임을 덜 질 수 있느냐에 있기도 하다.


‘껍데기형’ 발주자도 있다. 이게 무슨 말인지 설명하려면 우리가 하는 조경 서비스업의 특성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위임”이나 “위탁”은 발주처가 권한이나 업무를 일정 부분 용역사 등에 주어 수임자나 수탁자가 자기의 권한으로 행사하게 하는 것이지만, “대행”은 대행자가 실질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더라도 그 효과는 원 권한자인 발주자가 직접 행사한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다. 미세하게 “대리”는 원 발주자를 위한 것임을 표시하고 대리자가 자신의 명의로 권한을 행사하나, “대행”은 원 발주자의 명의로 권한을 행사하되, 사실상의 실무는 대행 기관이 하게 하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건축도 마찬가지인데, 인허가 업무 등에 흔하지 않게 대리 또는 대행의 성격이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조경가가 수행하는 서비스는 위임이나 위탁으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계약서에 명시된 과업 내용과 책임소재를 토대로 보면, 특수한 경우가 아닌 이상 대부분 위임이나 위탁 성격의 업무이고 이에 대한 대가만을 받고 있다.


그런데 간혹 자기 일을 대행하라고 일을 떠미는 발주자들이 있다. 내부 보고 문서를 작성해 달라고 은근슬쩍 템플릿을 던져준다든지, 조경 설계 공간을 마주하는 상가가 어떤 비즈니스 모델이어야 할 것 같은지 의견을 내라고 하던지, 다른 공종 컨설턴트와 미팅을 주관하라든지 하는 것들이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이는 수행 프로젝트와 관련된 내부 보고 문서에 들어갈 자료를 활용 가능한 형태로 추출해준다거나, 조경 설계를 할 때 상가의 비즈니스 모델과 방문자 특성을 충분히 고려해서 하는 것, 다른 공종과의 설계 방향을 협의하고 간섭이 생기지 않도록 검토하는 것 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전자는 사실 생각해보면 발주자 본인의 일이다. 이를 떠넘기는 것은 갑질이고, 스스로 무능력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발주자의 의무도 우리가 다 해줘야 한다면 발주자 자신은 없어도 되는 그야말로 껍데기에 불과한 것 아닌가?


조경도 대리나 대행에 해당하는 업무를 할 수 있다. 그럼으로써 좀 더 주체적인 역할을 하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을 수 있다. 다만 이에 따른 대가와 권한이 함께 필요한 일이지, 위임과 위탁만 한 상황에서 필요할 때마다 본인 일을 떠넘기는 것, 발주자의 의무를 가볍게 여기는 것을 문제 삼는 것이다. 애초에 어떤 프로젝트가 시작될 때, 조경가가 원래 어떤 할 일이 있는데, 감독자가 필요해서 발주자한테 관리·감독을 요청한 것이 아님을 생각해보자.

이렇게 숙제 검사자 형이나 껍데기 형 발주자가 난무하다 보면, 발주처에는 조직적인 지혜가 쌓이기 어렵다.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노하우는 용역사에게 남고, 발주처에서는 기껏 이전 용역사가 남기고 간 자료를 선례로 제시할 뿐이다. 이는 발주처에 시스템이 있고 템플릿을 제공하는 것과는 매우 다른 이야기다. 이런 식으로 일을 하다 보면 아마 발주처는 본인들의 편의를 위해서라도 ‘말아먹었지만 그래도 해본’ 사람이 ‘정말 잘할 수 있는 새로운 사람’보다 좋을 수 있다. 이처럼 잘하는 놈보다 해본 놈을 계속해서 뽑다 보면 더는 발전도 자각도 없는 덩치 큰 고인 물이 되는 것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어차피 직접적 소유자나 사용자가 아닌 이들은 정말 좋은 공간이 만들어지는지, 이 공간의 사회적 함의가 무엇인지 등을 생각하고 수호할 동기가 애초에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숙제 검사자나 껍데기를 벗어난다면 그들 스스로 하는 일이 더 즐겁고 보람찰 것이고, 우리는 같이 고민하고, 함께 노력하면서 더 좋은 결과물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이런 발주처를 몇 만나게 되어 참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4. 멋있어져라

갑과 을은 본래 부정적인 의미의 말이 아니지 않은가? 처음 계약서를 작성할 때는 을이란 말이 기분이 나빠 갑, 을 대신 발주자와 설계자 등으로 바꾸기도 했었는데, 사실 문서작성 편의상 A, B라고 표현한 거나 다름없을 뿐인어감 내가 너무 예민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단, ‘갑질’은 어감이 다르다. 발주자가 계약 관계에서 우월적 지위에 있다고 판단하여 권한을 남용하거나, 우월적 지위에서 비롯되는 사실상의 영향력을 행사하여 상대방에게 행하는 부당한 요구나 처우를 ‘갑질’이라는 말로 폄하해 부르는 것처럼, 이를 알면서도 바보같이 당하고 있는 ‘을질’은 과연 괜찮은가를 이야기하고 싶다.


자문회의에 가보면 을이 자문위원들에게 혼나고 있다. 갑은 자문위원에게 미진한 발표를 들으러 모시게 되어 죄송하다고 사과한다. 을은 ‘잘 검토하여 반영하겠다’는 정해진 답을 하고 최대한 평화롭게 회의를 끝낸다. 발주자가 자신의 판단을 두려워하면서 책임회피의 방식으로 자문위원에게 전문성이 갖는 가치 이상의 오만한 힘을 실어줬다면 그건 발주자의 잘못도 있겠지만, 나는 오히려 혼나는 것을 당연시하는 을의 태도에 더 놀랐다. 내가 자문위원이었던 어느 회의에서, 프로젝트 기간이나 컨소시엄 구성을 이상하게 해놓고 졸속으로 일을 진행하는 발주처를 지적했더니 정작 발주처는 자기한테 하는 소리인지도 모르고 있고, 자동으로 용역사가 사과하는 기가 막힌 상황도 있었다. 자문회의는 잘만 하면 프로젝트의 난관을 해결하거나 오답을 비껴갈 수 있도록 하는 정말 좋은 업무절차인데, 이런 식의 자문회의에서는 의견을 주고받는 토론이란 것을 이어갈 수 없다.


소극적, 수동적이고 주눅 든 을의 태도는 그야말로 을을 을질의 틀 안에 갇히게 한다.


말하는 태도나 비판을 받아들이는 자세도 달라야 하고, 앉거나 서 있는 자세조차도 달라져야 한다. 자리 배치가 이상하면 당당하게 자리를 요구해야 하기도 한다. 이 분야에도 계속해서 필요한 인재가 들어오려면, 미래 세대 중 누군가가 “아, 저 직업 멋있네” 해야 할 것이 아닌가? 나와 같이 일하는 소장은 가끔 어디 좋은 레스토랑에 가면 맛있는 걸 먹으면서 농담 삼아 “캬, 성공한 변호사의 삶, 이거지” 라는 말을 하기도 하는데, 성공한 변호사의 삶을 찾지 말고, 성공한 조경가의 삶을 그려보자.


#5. 공부해라 1. 조경을 공부하기


단지 태도가 바뀐다고 갑자기 멋있어 보일 리는 없다. 우선 자문회의를 예로 들어, 몇 달 또는 몇 년을 집중해서 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사람이 제아무리 전문가라고는 하지만 잠깐 보고 검토 의견 내는 사람에게 반박조차 못 할 정도로 일을 허투루 했다면 그때는 당연히 ‘잘 검토하여 반영하겠다’고 하고, 나와야 한다.


어떤 분야든 마찬가지겠지만 한 분야의 제대로 된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공부할 게 너무 많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나를 포함해 전반적으로 조경하는 사람들이 조경 분야가 다루는 특수한 대상인 식물, 자연을 모르는 것뿐 아니라, 지금 환경이 처한 상황의 심각성, 이를 해결하는 방법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만드는 과정에 대해서도 충분히 모른다. 우리는 몰탈이 다 몰탈인 줄 아는데, 그렇지 않더라. 우리가 만드는 공간의 이용자인 시민이나 대중의 욕망이나 취향, 불편함과 심리도 잘 모르고, 이들의 문제를 해결해줘야 하는 공공이 무엇에 따라 움직이는지, 그들이 어떤 것은 가능하고, 또 어떤 것은 할 수 없는지도 잘 모른다. 모든 것을 다 알아서 직접 할 수 있을 만큼 알 필요도 없고, 알기도 어렵겠지만, 그래도 최소한 무엇인지는 이해하고 있어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그냥 이 분야에 발을 담그고 있다고 해서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서 공부가 필요하다.


충분한 지식이 뒷받침해주지 않는 상황에서 태도와 철학을 이야기하는 것은 공허하다. 땅을 대하는 태도, 수평성 같은 걸 멋지게 이야기하려면 조경뿐 아니라 여러 방면으로 공부를 열심히 해서 조경 내부적인 언어가 아닌 다른 사람, 다른 분야와도 소통할 수 있는 언어로 주장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공부하려는 의지만 있으면 되는 걸까? 공부가 득이 되게끔 제도가 달라지고 질 좋은 교육이 제공될 필요가 있다. 최근 다시 조경사 제도의 도입에 관한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는데, 조경사 제도의 도입은 장기전이 될 수 있으므로, 그전에라도 조경 관련 자격증, 기술 등급의 평가제도에서 불합리한 점이 있다면 이를 목소리 내서 조경 공부를 함으로써 얻는 개인적인 뿌듯함 외에도 분명한 동기부여가 있도록 해야 한다.


#6. 공부해라 2. 조경아 공부해라


조경계가 더 공부했으면 하는 것은 주로 스스로에 대한 부분이다. 특히 공원에 대한 이슈가 많아 공원을 예로 든다면, 공원의 유형은 어때야 하는지 (기존의 공원 유형에서 시대에 따라 달라지거나 추가될 것은 없는지), 공원 조성비는 얼마인지, 공원에 대한 가치 추정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공원을 계획하고 설계하는 데 필요한 업무와 프로세스, 그리고 그에 대한 대가 측정은 잘 되었는지 등이다. 당연히 다 나와 있을 것 같지만 막상 답을 찾아보면 없다.


#3의야기와도 연결되지만, 어느 시에 공원을 조성하는데 합당한 공원 조성 단가가 얼마인지 또는 근거로 활용할 수 있는 공원 사례로는 어떤 것이 있는지를 시가 용역사에 물어보고 있으면 안 된다. LH 단가가 있다 해도 너무 오래되었고, 그게 지역별로 다를 수 있으므로 해당 지역의 데이터는 스스로 가지고 있어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 뭐 그렇게 어려운가? 조성 단가가 제대로 없으니 공원을 지을 때 타당성 조사는 늘 난항을 겪는다. 하나 마나 하고 논리적 비약이 정말 많지만, 예전에 써봤던 방식으로 얼버무리고 냈는데 공공이 좋은 뜻에서 하는 일이니 넘어가면 다행이고, 정치적 탄력을 받지 못하면 없던 일이 되고 만다. 이게 일개 지자체 부서에서 할 일이 아니면 조경계에서 스스로 필요한 연구를 좀 했으면 좋겠다.


“제가 공부를 제일 잘하는데 (그래서 공부 그만해도 되는데), 제가 제일 공부를 많이 해요.”


어디서 수석을 했다거나 만점을 받았다는 학생들이 하는 말이다. 원인과 결과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들릴 수 있는 이야기인데, 나는 여기서 ‘공부를 제일 잘하는 사람도 여전히 공부를 열심히 하는데, 잘하지도 못하는 사람이 왜 안 하고 앉아있냐?’는 측면에 주목하고 싶다.


마무리하며


언제부터인가 탈조경이라는 말이 쓰이기 시작했다. 환경과 생태 위기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정원을 필두로 살아있는 자연에 관한 관심이 크게 높아지고 있어 조경이 예전보다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가, 너무 오래 쪼그라들어있어서 그런지 그런 동력이 잘 보이지 않아서 걱정이다.


물이 들어오는데 저을 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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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수정일: 2021년 11월 18일

Landscape's take on shifting what dams have to offer



'Is perceiving dams as a mere infrastructure enough in today's world?'


<<Masterplan for Landscape Remediation on Dam Environment>> is an ongoing effort to encompass a vast majority of major dams in South Korea under a single, unifying goal: to transform these rigorous, brutal infrastructures of the past into beacons proliferating sustainable lifestyle of the future. Through proposing reforestation, pedestrian-friendly planning, sustainable energy showcases and rainwater harvesting all the while giving dams a 'sense of place', this project openly tackles the superficial usage of infrastructural space as a mere recreational area sitting on top of the elephant in the room, unable to properly address the pros and cons to assess the deeper value within the site.

28 dams and their locations. Project site comprises of 28 dams across S.Korea, with over 2,354,000 sqm in area.



DAMS: a brief timeline


From a ground-breaking idol of the generation to a troublesome nuisance, this gigantic infrastructure – once conceived as a panacea to all problems – now represent an aggregation of indiscreet decision-making, where changing values and lifestyles of different generations collide.


On a path crossing stilling basin of Hapcheon Dam, Mar. 2021


This modern infrastructure gave it all at first: it was a single answer to a millennia-old problem of irrigation and flood control at a large scale, and a quick dose of adrenaline to a depression-stricken, unemployed ’30s. Watersheds and rivers were regarded as infrastructural opportunities, albeit the sheer defiance with nature it entailed. It was only several decades later that people started to look at what they had drowned under the lake, as environmental movement became active, leading to the removal of Elwha Dam a generation later, a milestone which has set the standard for many of the coming environmental policies in the U.S.


To South Korea – one of the world economy’s many followers that have been bench-marking pioneers – however, this newest notion of ‘environment first’ is still a far-fetched idea; dams, if not for their role in water security, are considered as recreational spaces, void of any environmental discourse, despite numerous recent occurrences of floods sweeping the nation almost every other year. Time has come where our current understanding of climate defies the infrastructural system we have established throughout 20th century.

From New Deal to COVID-19 and climate crisis of today, dams have undergone drastic changes in how they were perceived.


Hence the question: should dams continue to neglect the changing environment and only stay as their infrastructural selves, disregarding sustainability? What values do dams need to attain, in order for them to become something more than a gray infrastructure?



DAMNOGWON(DAM錄園): dams with 'environmental leadership'


The project features the brand Damnogwon ('Green Dam Garden') that aims to reevaluate dam environment and transform it into a destination that showcases the possibility of green-gray infrastructure. Knitting fragmented spaces around dams into an arboretum-like spatial sequence, Damnogwon not only focuses on sustainable usage of resources coming in and out of the park, but also exhibits various aspects of dams and surrounding areas into display, through spatial experience that entails both naturalistic and structural beauty of dam landscape, some of which are serene and sublime. The ironic and unique juxtaposition of nature and iconic infrastructure that only dams have seamlessly induces users to ponder upon what sustains contemporary urban lifestyle centered around material civilization, and what had been sacrificed in the process.



Project Masterplan for Landscape Remediation on Dam Environment


Location South Korea


Client

K-Water


Design Year

2020 ~ ongo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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