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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LD

HLD is a creative design practice founded by Hoyoung Lee and Haein Lee. For spatial problems and challenges, HLD’s design seek to provide “critical interventions”, which we define as a set of actions and design devices, both physical and operational, that enables positive changes by finding missing links between the place’s current state and its full potential. Redefining the given question to find “what would be critical to impact the lives of people who inhabit the place?” is always the beginning of our design quest. We refrain from providing design services for superficial aesthetic improvement, embellishments or stylizing. While armored with specialized knowledge and skills as landscape architect and with affection toward natural beauty and respect for the site’s urban and ecological context, HLD’s critical interventions are not confined to landscape architecture’s conventional realm, but rather encompasses diverse fields of design for their creative thinking, utilizes diverse fields of analysis for their practical insights, and materializes ideas through various scales from tactile expression to regional visioning. Big or small, HLD values a humble yet fundamental approach that is environmentally and socially responsible.

HLD는 이호영과 이해인이 설립한 창의적 디자인 회사다. HLD의 디자인은 공간적 문제와 도전과제에 대해 “핵심적 개입”을 제공한다. 핵심적 개입이란 물리적 또는 운영적 측면에서 대상지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과 현 상태 사이의 빠진 고리를 찾아냄으로써 긍정적인 변화를 가능케 하는 조치나 설계적 장치를 의미한다. “이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주기 위해 가장 핵심적인 것은 무엇인가?”라고 질문하는 것으로부터 우리의 설계는 시작된다. 우리는 피상적인 외관 개선이나 장식, 스타일 입히기를 지양한다. HLD의 핵심적 개입은 전통적인 조경설계의 범위에 국한되지 않으며, 다양한 분야의 분석을 활용한다. 조경가의 전문적 지식과 기술,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애정, 그리고 대상지의 맥락에 대한 존중을 통해 촉각적 표현부터 지역적 비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케일의 아이디어를 구현한다. HLD는 모든 스케일의 프로젝트에서 환경적, 사회적으로 책임감 있는, 근본적 접근을 추구한다.



HLD 홈페이지에 쓰인 소개문이다. 앞으로 몇 차례 개정을 거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다시 보아도 이 글은 진심이다. 우리가 하는 설계가‘좀 더 고급스러운 정원을 갖고 싶어요 (남들이 좋다고 할 만한 정원 만들어주세요)’ 또는 ‘나 땅 좀 있는데 뭐 할지 모르겠어요 (지금은 뭘 원하는지 몰라도 내가 싫어할만한 것은 하지 마세요)’같은 사소한 고민(아래 그림 참조)에 답하는 것이 아니라, 크든 작든 좀 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었다. 대상지가 제 기능을 다 하지 못하고 있는 근본적 이유가 있을 텐데, 일을 의뢰하는 사람이나 공정을 관리하는 사람의 의도는 그와 무관한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그래서 주어진 문제를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우리 나름대로 문제를 다시 정의하고 문제의식을 발주처와 공유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간혹 설득이 안되면 이를 숨겨진 제2의 아젠다로라도 꿋꿋이 지켜나가기 위한 요령도 필요하다.


그림 1 1. 무한도전에서 배우 김혜자씨가 해외 봉사를 나가 그 곳의 참혹한 현장을 본 뒤, 우리네가 한국에서 지지고 볶는 일상의 갈등에 대해 한 말 (이 장면을 본 뒤, 나는 내가 하는 고민이 쓸데없는 것이 아닌지 더 자주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가 하는 일의 본질을 핵심적 개입 (critical intervention)이라 표현했는데, 핵심적 개임, critical intervention이라는 말에서 critical은 ‘비판적인’이란 뜻이 아니라 ‘없어서는 안 될’, ‘결정적인’의 뜻이다. 이 결정적인 한 방은 처음에는 잘 안 보일지라도 일단 찾고 보면 너무나 필수불가결하고 필연적인 것일 때가 많다. YISS 프로젝트는 원래 교문 밖에서도 보이는 보강토옹벽의 경관을 개선하자는 정도의 목적에서 생겨난 프로젝트다. 실제 학교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공간을 만들자는 것이 아니라 방문자나 지나가는 사람 보라고 교문을 새로 짓고 겉치장을 한다고 해서 뭐가 얼마나 달라질까? 이 학교는 과연 학교다운 공간을 갖고 있는가? 교문에서 언덕 위 본동 건물까지 보도는 그저 차도를 따라가고 있을 뿐이고, 그 옆 경사녹지는 온양석 조경석 쌓기로 덕지덕지 마무리 되어있었다. 걸어서 통학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지만, 참 매력 없는 등굣길이다. 사실 보기 싫은 보강토 옹벽이라고 규정되었던‘문제’의 핵심은 옹벽 자체가 아니라 대상지 주변의 맥락과 연관성도 없으면서 학교다운 공간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경사 처리, 그리고 아이들에게 필요한 공간이 뭔지에 대한 진지한 고려가 부족했던 점에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보도를 차도로부터 분리해서 숲 안으로 집어넣고, 동선을 따라 기존 캠퍼스에 없던 사회적 공간(스탠드)과 지름길(계단)을 설계했고, 프로젝트의 제목은 <In the Forest>라 지었다.

창원대상공원 설계에서 핵심적 개입은 도시와 공원의 연결(link)이다. 복잡계 네트워크 이론에 따르면 하나의 링크가 생겨나면, 앵커, 노드, 허브가 발생하면서 네트워크가 구축된다. 그만큼 링크가 하나라도 있느냐 없느냐는 중요하다. 창원대상공원처럼 우리나라 도시 안에 남아있는 공원 중에는 접근이 어려운 언덕 지형이 많다. 언덕인 덕분에 남아있는 것이기는 하나, 도시와의 링크가 제대로 구축되지 않아 주변과 함께 기능하지 못하고 섬처럼 존재해 그 효용이 떨어진다. 이 프로젝트는 강력하지만 최소한의 영역(footprint)을 갖는 접점부를 마련해 공원이 도시 네트워크 조직에 들어올 수 있도록 해주는 것에 집중하고, 프로그램 박물관처럼 수십개 야외공간 채워넣기는 하지 않았다.

장소(place)가 가진 역사성이나 맥락은 그 자체로 대체가 불가능(irreplaceable)하다. 그래서 많은 경우 우리의 핵심적 개입은 여기에서 기인한다. 낙원상가 옥상공간에 대한 제안에서 삼일대로나 낙원상가가 생기기 이전, 가로와 골목 공간으로서 이 공간이 가지고 있던 공공성을 회복하기 위해서 지적도에 남아있는 예전 도시 조직의 흔적을 시각화하고 이를 역사 정원 공간으로 구현해 낸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홍대복합역사 AK숲길 프로젝트에서 경의선 숲길의 한 연장으로서 철길의 모티브를 이어나간 것, 베트남 호치민의 호텔 프로젝트에서 다랑논의 경관을 재해석한 것도 마찬가지다.

핵심적 개입은 좀 더 소소하게도 일어난다. 기아 비트 360과 같이 상업적인 전시 공간에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아젠다는 숨어있지 않다. 좁고 긴 건물 뒤 숨겨진 자투리 공간 안에서 문 밖으로 나오면 갑자기‘아웃도어’, ‘오프로드’, ‘깊은 숲’을 느낄 수 있어야 된다는 과제가 주어졌을 때, 기존 안처럼 트리하우스를 짓고 텐트를 펼쳐놓는 등 아이템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몰입되는(immersive) 경험을 전달하는 설계적 장치들을 마련해야한다고 방향을 정한 것이 가장 중요했다. 공간을 깊게, 또 하나로 연속적으로 느끼게 하기 위해서 공간 중심부의 레벨을 500mm 낮춘 것, 섬세한 꽃꽂이가 아니라 다간형 자작나무를 적절히 섞어 좁은 공간에서 최대한 깊은 공간을 연출한 것, 질감의 강한 대비를 이용해 물성에 관심 갖도록 유도한 것, 이 세 가지가 사소하고 부차적인 도구(gadget)들을 다 버리고 남은 장치들이다.

핵심적 개입이라는 것이 사실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해서, 지극히 당연한 걸 유난스럽게 이름까지 지어준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쓸데없는 데에 우리의 노력을 헛되이 낭비하지 않으려는 자정장치로서 (동시에 보호장치로서) 이 개념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렇게 해도 되고, 저렇게 해도 되는데 결정하는 사람의 선호도에 따라 결정하면 되는 대안이 나왔다고하면, 아마 우리가 문제의 본질을 재정의하고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데 성공하지 못해서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설계를 하는 건 정말 곤욕이다. 결정권자의 마음을 모르는 담당자의 노파심 섞인 요청에 안내판 위에 시계가 이렇게 박힐지, 저렇게 박힐지에 대한 24가지 대안을 만들고 있자면, 내가 왜 설계를 하고 있나 자괴감이 들 수도 있다.

반면 본질에 충실할 수 있던 프로젝트는 살인적 스케줄과 작업량에 고생을 했더라도 조금은 그 안에서 느끼는 러너스하이 (runner’s high)같은 도취감과 보람을 찾을 수 있다. 인건이 기정의 숨겨지고 잊혀진 이야기를 대상지의 지질, 경관, 문화 사이의 연결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공원 설계의 중심에 놓고, 이 곳의 기억이 지름작지왓에서 작박담으로 이어지는 내러티브가 되도록 설계한 대포중문 주상절리대 경관설계 제출안 <인건이 기정의 기억과 조망>은 껍데기를 걷어내고, 그 장소의 생리를 다시 살려주는 것 외의 개입은 최소화했다. 공모전을 치른 뒤 후유증은 있었지만, 후회는 남지 않는 프로젝트다.


물론 핵심문제 빼고 나머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서두에 언급했듯 사람마다 생각이 달라서, 핵심적 개입이 세상 빛을 보기 위해서는 설득력과 전달력이 필요하고, 여기에는 디자인의 창의성, 독창성, 세련됨, 아름다움, 기능성이 다 필요하다. 그래서 좋은 설계를 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이걸 다 잘하기도 어려운데, 요즘은 근본적인 대책을 위해서 조경 분야 밖으로 범위를 넓혀야하는 일이 많다. 요즘과 같은 미세먼지가 많은 날씨에서는 아무리 아름답고 좋은 공원이 있다고 한들 그 곳을 방문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평택석정공원에서 미세먼지를 저감할 있는 숲의 두께, 수종, 층위 등 분석하여 공간에 적용하고 미스트장치 등을 통해 국지적으로 미세먼지를 차단할 수 있는 전략을 제시했지만, 고민이 여기서 멈추면 핵심적 개입에 이르지 못할 수 있다. 줌인 줌아웃을 자유자재로 하면서 다양한 스케일의 문제를 다룬다는 것이 조경가로서 우리가 가진 강점인데, 불필요한 문제에 집중하다가는 사회의 미래를 고민하는 중대한 문제는 외주화하고 정작 전문가인 우리는 테이블에서 목소리를 잃기 쉽다. 이미 많이 일어나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여러모로 근육을 키우고, 용기를 내고, 참여를 해야한다는 생각이 든다.

젊은 조경가상 시상식에서 ‘이들은 과연 젊은가?’라는 질문이 있었다. 둘이 합해 (만)78세, 평균나이 (만)39세인 우리는 마냥 젊게 느껴지는 나이가 아니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젊다고 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에게 아직 한참 배움의 길이 남아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기득권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세상에 대해 허무주의적, 냉소적 태도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그렇다고해서 열심히 많이 해보면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말에도 공감하지 않는다. 본질에 대해 진정성 있는 탐구와 시도를 함에도 불구하고 일를 그르치기는 어렵다는 것 정도를 믿는다.

하, 말하고 나니 멋있다. 그게 문제다. 둘이 집에 가면서 했던 대화가 갑자기 생각났다. 우리 왜 이렇게 허구헌 날 사서 고생이냐고 한 명이 물었고, 다른 한명이 대답했다. 내면의 후카시 때문이라고.

haein.lee@hldgroup.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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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수정일: 2021년 6월 8일



*'짧은 관찰기' 시리즈에서는 자생지에서 촬영한 식물의 사진과 함께 해당 식물의 식물사회학적 특징을 소개합니다. 이에 기반하여 해당 식물을 외부공간에 적용한 사례를 함께 소개합니다. 개미자리에 대한 식물학적, 식물사회학적 정보는 김종원 교수의 「한국식물생태보감 1권」에서 참조하였습니다.



2021년 5월 5일 오전 8시, 강남구 개포동 1247-4에 위치한 건물 주차장에서 촬영한 개미자리의 모습. 콘크리트 담의 바로 아래쪽은 상대적으로 사람들의 발에 덜 채이기 때문에 이렇게 크게 자랄 수 있다.
위와 동일한 장소, 동일한 시간.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개미자리는 흙이 거의 없어보이는 곳이더라도 잘 살아간다(믿기지 않게도!). 그래서 개미자리는 도시생태계의 생물학적 사막을 가늠하는 진단종이라고 한다.

위와 동일한 장소, 동일한 시간대에 발견한 은이끼(추정)와 개미자리 유묘. 개미자리는 도시의 온갖 틈새에서 종종 은이끼와 함께 발견된다. 이러한 식물사회를 개미자리-은이끼 군집이라고 한다. 은이끼가 선구자로서 개척한 곳에 뒤따라서 개미자리가 들어선다고 한다.

김종원 교수는 개미자리-은이끼 군집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새로 만들어진 콘크리트 틈바구니가 있다면, 그 곳은 화산폭발로 새롭게 만들어진 용암바위보다 더욱 험악한 환경이다. 아무 것도 없고, 쉽게 생명이 깃들지 못하는 황무지다. 한 줌의 흙도 없으며, 생명의 징후를 기대하는 것은 터무니없다. 그러나 아파트 입주민의 신발창에 묻어온 흙 알갱이와 먼지는 콘크리트 틈새를 메우고도 남는다. 그렇게 옮겨온 흙을 환산해 보면, 낙동강 물막이 공사로 한 달 동안 실어나는 대형 덤프트럭의 흙더미보다 많은 양이다. 틈바구니를 메우고도 남는다. 은이끼가 정착하기에 충분하고도 남을 만큼 흙 속 자양분 또한 풍요롭다. 사람이 돌아다니면서 묻혀온 흙이란 것은 질소와 인이 풍부한 부영양 덩어리이기 때문이다. 드물게 음식찌꺼기 같은 유기물로 범벅이 된 흙을 뒤집어 쓰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면 은이끼는 단숨에 시멘트 틈새를 가득 채우는 군락을 만들게 된다. 은이끼 양탄자가 만들어지고, 그곳에서 개미자리가 자리를 잡는다. 간혹 질경이나 새포아풀이 비집고 들어오지만 틈새가 너무 좁아 개미자리 이외는 살기가 어렵다.'



2021년 5월 15일 오전 11시 대치동949-7. 개미자리가 괭이밥, 새포아풀과 함께 자라고 있다. 털 같은 것은 대부분 양버즘나무의 씨앗.

2021년 5월 17일 오후 삼성동 어딘가. 애기땅빈대(사진 중앙, 대생하는 잎을 가진 식물)와 개미자리, 은이끼가 자라고 있다. 애기땅빈대는 북미에서 온 신귀화식물로 도시의 교란된 서식처에서도 잘 자란다.


2021년 5월 18일 오후 2시. 하얗고 작은 꽃이 핀다. 꽃은 봄에 피기 시작해 여름까지 이어진다.


개미자리와 개미. 김종원 박사에 따르면 개미자리의 종자는 고단위 식물성 단백질을 제공하는 에너지 원천으로 블록 틈에서 사는 개미들은 개미자리의 열매를 수확하러 다닌다고 한다.



서울식물원의 한 정원에 개미자리를 적용한 모습. 개미자리는 정원식물로서도 아주 든든한 식물이다. 한 자리에서 오랜 기간 동안 작고 하얀 꽃을 피운다. 과습이 되지 않게 주의하도록 한다.


토끼풀과 개미자리. 일반적인 경우라면 이런 관계에서 번식력이 강한 토끼풀에 개미자리는 곧 정복당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선 조금 다를지도 모른다. 개미자리와 토끼풀 사이 굵은마사가 뿌려진 곳은 그 밑으로 쇄석이 20cm 정도 포설된 배수로로 비가 올때만 간혹 물이 차는 곳이다. 흙이 거의 없는 이러한 곳은 다른 식물들에게는 극한의 환경이지만 개미자리에게는 최적의 입지다. 그래서 어쩌면, 이 둘은 생각보다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할 수 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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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pping into the Cyanotype world


Note: 이 글은 2021.02.08 월요일 아침에 진행한 MMS 에 대한 (때늦은) 기록, 요약 및 보완이다.


윤병두


04.15 한가로운 오후 사무실. Cyanotype on paper(19 x 25.5cm). 4월 19일 오후 12시 40분부터 약 5분간 노출.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Cyanotype*은 생소하지만 청사진(혹은 Blueprint)은 익숙하게 들릴 것이다. 청사진의 사전적 정의를 살펴보면 '미래에 대한 희망적인 계획이나 구상'으로 풀이되는데 그 어원은 실제 건축 도면 등을 복사하던 방법에 있다. 청사진법(cyanotype or blueprint)은 현대의 복사기와 같은 장비가 없던 19세기에 John Herschel에 의해 고안된 인화법이다. 당시에는 사진의 선구자들 사이에서 이미지를 보다 완벽하게 기록하려는 경쟁이 치열했다. 많은 방법들이 실험되고 버려졌는데 과정이 너무 느리거나 비용이 많이 들거나 혹은 위험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청사진법은 그중에서 쉽고 빠르며 무엇보다 저렴하게 인화가 가능한 방법이었지만 결과로 만들어지는 이미지 전체가 푸른색이었기 때문에 보다 완벽한 흑백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데에 집중했던 당시 대부분의 사진가들 사이에서는 인기를 얻지 못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장점들로 인해 Cyanotype은 건축 등의 도면을 복제하는데 쓰이다가 현대에 와서는 일부 예술가들에 의해 사용되는 등 그 쓰임을 달리하며 명맥을 유지해왔다. 영국의 식물학자이자 사진가인 Anna Atkins는 그녀가 수집하거나 다른 아마추어 과학자들에게 받은 해조류 연구 표본들을 Cyanotype으로 만들어서 책**을 발간하기도 했다.


Anna Atkins의 Photographs of British Algae: Cyanotype Impressions 중 일부. 현재는 뉴욕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에

보관되어 있다. Image source: https://www.ai-ap.com/publications/article/24453/anna-atkins-cyanotypes-at-nypl.html



간략한 역사를 살펴보았으니 본격적으로 Cyanotype을 어떻게 만드는지 얘기해보도록 하겠다. 기본적인 원리는 특정 용액을 종이에 발라 빛에 노출시켜 일어나는 산화 반응을 통해 이미지를 얻는 것이다. 여기서 특정 용액의 화학식이 뭐고 어떻게 빛에 반응하는지 등의 설명은 아무도 관심이 없을 듯하니 그만두고 간단한 다이어그램으로 대체하겠다. (구글에 검색하면 설명이 잘 나와있고 필자가 글을 쓰는데 참고한 서적을 기재해 놓을 테니 찾아봐도 좋지만 번역본이 없는 영문이라는 건 함정)


빛에 노출된 부분은 산화반응을 일으켜 푸른색으로 변하고 물체의 그림자가 진 부분은 하얗게 남는다.



아마 위 이미지들을 보고 매료된 여러분은 어서 빨리 Cyanotype을 만들어보고 싶을 것이다. 과정이 생각보다 간단하고 재료도 매우 저렴하고 쉽게 구할 수 있다. 자 여기 네이버 쇼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이 있다.



첫 번째로 용액 키트. 네이버 쇼핑 검색 당시 17,000원에 구매 가능했다(21년 5월 10일 기준). 꼭 상단의 이미지와 똑같은 키트를 살 필요는 없다. 저 키트는 해외 직구를 해야 하는데 배송비가 더 비싸서 약 5-7만 원가량 드는 것으로 파악됐다. 용액은 어차피 다 똑같으니 흰색 통에 들어있는 17,000원짜리를 구매하자. 두 번째로 용액을 바를 수 있는 브러시가 필요한데 이것도 마찬가지로 아무 브러시나 상관없다. 폼 브러시여도 괜찮고 일반 붓이라도 괜찮다. 다만 목이나 손잡이가 금속으로 된 것들은 용액과 반응할 수 있으니 주의하자. 마지막으로 용액을 바를 종이가 필요한데 일반 스케치 노트부터 고급 수채화 종이까지 정말 다양하게(본인이 원하는 대로) 사용하면 된다. 처음 시작하는 분들이라면 가격이 저렴한 스케치북 등으로 연습을 해보고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두께감이 있는 수채화 종이를 사용하는 것을 추천한다.


재료를 구비한 여러분은 이제 Cyanotype을 직접 만들어 볼 수 있게 됐다. 먼저 각자 구입한 용액 키트를 꺼내보자. 각각 A 타입, B 타입이라고 적힌 용기 2개가 있을 텐데 액체가 들어있을 것 같이 생겼지만 사실은 안에 가루밖에 없다. 물을 각각의 용기에 채워주고 내용물이 잘 섞이도록 흔들어주자(가득 채우면 잘 안 섞일 수 있으니 95% 정도만 채우자). 이 상태에서 24시간 동안 숙성 시켜 놓는 것이 좋다고 설명에 나와있을 것이다. 대충 24시간이 지났다고 하고 준비했던 종이에 용액을 바를 차례가 되었다. 먼저 두 가지 용액을 1:1 비율로 섞을 수 있는 컨테이너가 필요한데 쓰지 않는 적당한 크기의 용기 아무거나 가져오면 된다(다만, 금속제는 용액과 반응할 수 있으니 플라스틱 등이 좋겠다). 필자가 사용해본 결과 용액 키트 뚜껑에 한번 가득 채워서 섞은 양으로 A4 크기의 종이 4~5개 정도 바를 수 있었으니 참고해서 양을 조절하길 바란다.



주의! 용액을 종이에 바르는 작업 시 강한 햇빛에 직접 노출되면 안 되므로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실내에서 하는 것을 권장한다

UV light에도 반응을 할 수 있으니 약한 전등 밑 혹은 어두운 환경에서 작업을 하는 게 제일 좋다


2월 8일 진행한 MMS 당시 사진. 종이에 용액을 바르는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다.

바를 때의 용액은 노란색과 연두색 사이 어딘가의 색을 발한다.



1. 코팅

브러시 에 용액을 묻혀 슥슥싹싹 빠르게 종이에 발라주자. 주의해야 할 점은 종이의 모든 면에 골고루 얇게 펴 발라야 한다는 것이다. 종이가 용액을 흡수하면 휘기 시작하는데 이때 제대로 펴 바르지 않으면 용액이 흐르면서 종이 끝부분에 뭉치거나 자국을 남길 수 있다(그런 효과를 일부러 주고 싶으면 놔두어도 괜찮다). 브러시를 사용하지 않고 종이를 용액이 담긴 컨테이너에 넣고 적셔서 코팅을 하는 방법도 있다. 균일하게 코팅이 된다는 장점이 있지만 종이 앞뒤로 코팅이 되기 때문에 용액을 많이 쓰게 된다.



2. 건조

종이가 코팅이 되면 건조를 시켜야 하는데 햇빛에 노출되는 순간부터 반응을 하기 때문에 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 암실에서 건조해야 한다. 빛을 차단할 수 있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검은 비닐봉지에 넣거나 서랍 같은 곳에 넣어 말려도 괜찮다. 건조되기까지 기다리는 것을 참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한 가지 팁은 헤어드라이기를 사용하는 것이다. 필자도 기다리기 귀찮아서 그냥 헤어드라이기로 말려서 사용해봤는데 결과물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다만 강한 바람으로 종이 위에 용액이 흐르는 자국이 남을 수 있으므로 조심해서 말리자. 다 말린 종이는 보통 노란색이 살짝 섞인 녹색 빛이 돈다. 건조한 종이를 바로 쓸 필요는 없다. 서랍에 보관해 두었다가 일주일 뒤에 써도 되고 두 달 뒤에 써도 되지만 그 사이에 산화 반응이 진행될 수 있으므로 최적의 결과를 얻고자 하면 바로 사용하는 게 좋다.



3. 노출

사실 가장 중요한 재료를 소개하는 것을 깜빡했다. 바로 종이를 빛에 노출시킬 때 그림자를 만들어내는 물체이다. 결국에는 그림자가 이미지를 만들기 때문에 어떤 재료를 쓸 것인지 생각을 해보아야 한다. Anna Atkins처럼 식물이 될 수도 있고 집에 돌아다니는 아무 물건이 될 수도 있다. 처음에는 이것저것 가져와서 다 해보길 권장한다. 그래야 어떤 물체가 어떻게 그림자를 만들어내고 빛을 얼마만큼 통과시키는지 실험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당최 무엇으로 해야 할지 모르겠는 사람들에게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휴지를 추천한다. 의외로 휴지가 정말 예쁜 그림자를 만들어낸다. 그 사이에 건조가 다 된 종이는 이제 아름다운 Cyanotype을 만들 준비가 된 것 같다. 어느 화창한 날, 그림자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물체와 잔뜩 기대에 부푼 마음을 안고 있는 종이를 검은 비닐봉지 넣고 밖으로 데리고 나가자.


2월 8일 진행한 MMS 당시 사진. 정말 여러가지 재료가 될 수 있다. 맨 오른쪽은 귤 껍질이다.


빛이 실내로 강하게 들어온다면 나가지 않아도 괜찮지만 확실하게 선명한 이미지를 얻고 싶으면 햇빛을 직접 받는 것이 좋다. 보통 화창한 날 12시~3시 사이의 강한 햇빛을 추천하는 데 종이를 4~5분만 노출시켜도 굉장히 선명하고 푸른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 부득이하게 아침이나 저녁 햇빛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노출시간을 훨씬 더 길게 해야 한다. 정말 날씨 컨디션에 따라 다르고 아침, 저녁 빛으로는 30분 이상을 노출해도 연한 하늘색 이미지만 얻게 되는 경우가 있다. 특히 그런 햇빛은 시간에 따라 그림자가 많이 이동하므로 이미지의 선명도도 떨어진다(의도적으로 그 움직임을 기록하려는 게 아니라면 추천하지 않는 시간대이다). 빛과 노출 시간에 대한 부분은 본인이 여러 번 시도를 해보면서 감을 익히는 것이 좋다. 개인적인 경험을 참고하자면 봄 기준 보통의 맑은 날 햇빛에는 5분 내외로 노출시키는 것이 적당했다.


억새1. Cyanotype on paper(19 x 25cm). 3월 10일 오후 2시 33분부터 약 6분간 노출.

노출 당시 햇빛을 수직으로 받게 하기 위해 플랜터에 기대어 세워놨다.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고정하는 것도 중요하다.


노출시키고 가만히 보면 서서히 푸른빛으로 색이 변하는 것을 육안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4. 워싱

노출된 종이를 화장실 혹은 싱크대로 가져가자. 남아있던 연둣빛 용액이 다 빠질 때까지 흐르는 물에 종이를 씻으면(물에 담가서 씻어도 좋다) 그림자가 졌던 부분만 하얗게 남고 나머지는 푸른색으로 변한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파랗지 않아서 실망할 수도 있지만 그 상태로 말리고 하루 정도 지나야 용액이 종이에 정착하면서 깊은 바다색(적절하게 노출을 시켰다면)을 띄게 된다.


2월 8일 진행한 MMS. 같은 날 제작됐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다른 결과를 보인다.



Cyanotype의 매력은 결과에 대한 불확실성에서 오기도 한다. 시간, 종이의 상태, 날씨의 변화 등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우연적인 요소들이 많고 그 자체를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면 더 흥미로운 작업이 될 수 있다.


Recording Time - 39°57'19.3"N 75°12'02.0"W. Cyanotype on paper(5.5" x 8.5").

20년 6월 14일부터 7월 20일까지 매일 15분씩 거실과 화장실에 들어오는 빛을 기록한 작업이다.

비가 오거나 구름이 많거나 바람이 불어서 날아가거나 하는 걸 잊어버리거나 등의 우연이 기록된 작업.


물방울. Cyanotype on paper(5.5" x 8.5"). 종이를 아크릴 판으로 덮고 그 위에 물을 뿌려 햇빛에 노출.


오늘의 점심과 플라스틱. Cyanotype on paper(19 x 25.5cm). 4월 14일 오후 12시 39분부터 약 5분간 노출.



기본적인 Cyanotype의 과정은 끝이 났다. 본인이 원하는 재료를 가지고 마음대로 이것저것 시도해 보면서 Cyanotype의 재미를 느끼길 바란다. 종이가 아니라 천 재질의 다른 무언가여도 좋고 여러 종류의 색이 들어간 Fabric에 해봐도 좋다(심지어는 계란 껍데기 안쪽에 하얀 막에 작업을 한 사람도 있다). 네거티브 사진을 직접 만들어서 Cyanotype에 이용하는 방법이나 Bleaching, Toning 등의 Cyanotype 이후에 할 수 있는 추가적인 방법들은 추후에 2편에서 설명할 예정이다.


날씨가 좋은 날 Cyanotype을 하러 밖에 나가 빛을 쬐는 10분과 어떤 결과가 나올지 기대하며 기다리는 시간이 일상에 조금의 즐거움을 더하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이 글을 쓰는 데에는 필자의 경험과 아래 참고 자료들이 큰 도움이 됐다.


Book

- Fabbri, Malin, and Gary Fabbri. Blueprint to Cyanotypes: Exploring a Historical Alternative Photographic Process. AlternativePhotography.com, 2014.


Website

- https://mpaulphotography.wordpress.com/2011/04/01/cyanotype-toning-the-basics/

- https://en.wikipedia.org/wiki/Cyanotype




*사이아노타입 혹은 시아노타입으로 발음한다. (CMYK의 그 Cyan이 맞다)

**Photographs of British Algae: Cyanotype Impressions(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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