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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위한 장소를 마련하는 일

*이 글은 69번째 304낭독회에서 낭독되었습니다. 2014년 9월 광화문에서 시작된 304 낭독회는 세월호에서 돌아오지 못한 304명을 기억하기 위해 시민과 작가들이 함께 만들어 나가는 낭독회입니다. 낭독회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관련링크 : https://304recital.tumblr.com/ )




눈에 띄지 않는 것들의 아름다움과 신비. 이를테면 한기 서린 곳을 덥히는 작은 풀의 비밀이나 어린 시절의 꿈 같은 것. 마음이나 영혼이라고 불리는 것. 이런 것들에 대한 나의 사랑과 믿음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나의 가치관과 삶의 목표를 결정해왔다. 머리가 굵어질 즈음엔 이 소중한 것들이 잊혀지지 않도록, 세상을 더 아름다운 곳으로 바꾸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문학선생님께 나의 생각을 말씀 드렸더니, 선생님은 세상을 더 아름다운 곳으로 바꾸는 것은 세상의 아름다움을 긍정하는 마음일지도 모르겠다고 답했다. 선생님의 말대로, 세상엔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이 아름다운 일들이 밤하늘의 빛점처럼 많았지만, 우리가 영혼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을 무색하게 하는 크고 작은 비극도 그만큼이나 많았다.

그 해 4월, 나는 군대에 있었다. 모처럼 쉬는 날이었고 티비를 틀어둔 채 방을 청소하고 있었다. 커다란 배가 침몰되었다는 말을 들었고, 전원이 구조되었다는 소식과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소식도 들었다. 자리에 앉아 뉴스를 보며 울었던 것이 기억난다. 그 날 이후로도 나는 자주 울었고, 그래도 살아야 할 날들엔 작고 노란 리본이 대신 울어주기도 했으며, 무력하다고 느껴질 땐 다른 사람의 손을 잡고 함께 울기도 했다. 그리고 어떤 날엔 울기를 거부하는 사람과 우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 함께 우는 법을 모르는 사람들을 보았다. 자식을 잃고 먹기를 거부하는 사람 앞에서 폭식하는 악마와, 우는 것도 우는 사람도 지긋지긋하니 그만 정리하자는 무감한 이웃들도 보았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은 멈추지 않고, 모독과 무관심 속에 부숴진 존재들은 어딘가에서 무력하게 사라진다. 작고 여린 것들이 쉬이 잊혀지는 우리들의 쓸쓸한 시대. 하이데거는 시인의 사명이란 곧, 이 시대에 사라진 신적인 것의 자취를 찾고 그것이 머물 곳을 준비하는 일이라고 하였다.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자리할 ‘장소’를 마련하는 일. 땅이 간직한 기억들을 모아 오늘의 순간으로 이어주고, 시간이 남기는 변화를 기록할 공간을 준비하는 조경가[1]의 일은 하이데거가 말하는 시인의 사명과 크게 다르지 않다.

건축가 아돌프 로스는 건축 가운데서 오로지 묘와 기념비만이 예술에 속하며 일상에서 사용되는 모든 건축은 예술의 영역에서 쫓겨나야 한다고 말했다. 먼저 떠나 보낸 이를 묻고 온 곳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시적인 순간과 마주칠 수 있기 때문에 이 말의 반은 틀렸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몸은 유한하고 기억과 기억을 담은 사물들은 시간을 따라 점점 바래진다. 힘이 있는 자들은 여린 기억들을 자신들에게 더 유리한 방향으로 이용하기 위해 왜곡하고 편집한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그곳에 존재함으로써 떠난 이들의 부재를 증명하는 기억의 공간은 조경가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슬프고 따뜻하며 정의로운 약속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 나라에 만들어진 기억의 공간은 상처받은 영혼들이 자리하기엔 너무도 차갑다. 설계자만이 이해하는 고상한 단어들로 구성된 기념비는 영혼이 전하는 말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감정으로 번역해주지 않으며, 공원 구석에 버려져[2] 오직 선거기간에만 정치인들로 북적 인다. 어떤 기억들은 그마저도 없으며, 기억되기를 거부당해 잊혀진다.[3] 비극은 끝날 리 없다. 멀리 떠난 혼들이 돌아와 상처를 씻고 남은 이들의 마음을 돌볼 수 있는 따뜻한 자리가 필요하다. 우리가 영혼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긍정할 수 있는 공간이 이 사회에 필요하다.

세상은 갈수록 이해하기 힘들어지고, 사회의 낮은 곳에 있는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은 다짐을 무력하게 한다. 살아있기에 죄인일 수 밖에 없는 우리는 매일 후회하고 반성하고, 쓰고 그릴 뿐이다. 그런다고 이 비극이 멈출 리 없다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 선생님의 말처럼, 따뜻한 상상과 기억의 말들이 하나 둘 모여 우리가 서로 안의 아름다움을 긍정하고, 어두운 곳에 빠진 진실된 기억들이 세월을 넘어 기적처럼 떠오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희망이 없다고 말하기엔 아직 이르다. 세상에는, 우리 안에는 아직 아름다운 것들이 남아 있다.




[1] 조경(造景)하는 사람. (사)한국조경학회에서 제정한 한국조경헌장에서 정의하는 조경은 아름답고 유용하고 건강한 환경을 형성하기 위해 인문적‧과학적 지식을 응용하여 토지와 경관을 계획‧설계‧조성‧관리하는 문화적 행위이다. [2] KAL기 참사 위령탑은 사건과 관계없는 양재시민의 숲에, 비극과 연결 짓기 어려운 추상적인 형태로 조성되어있다. 성수대교 참사 기념탑은 사람이 걸어서는 접근할 수 없는 교통섬에 덩그러니 놓여있다. [3]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자리엔 아파트가 세워졌다. 그 곳에는 참사를 기억하는 표지석 조차 없다.대구 지하철 참사를 기억하기 위한 시민안전테마파크 건립사업은 인근 주민들의 큰 반발을 샀다. 주민들은 희생자의 이름이 적힌 추모비는 ‘위락지구’인 팔공산자연공원과 어울리지 않다고 주장하며 추모행사가 일어날 잔디광장 조성 역시 반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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