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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의 뉴노멀

In the spaciousness of uncertainty, there is room to act.


Note: 이 글은 <환경과 조경> 2020년 10월호에 [뉴노멀 시티스케이프] 기획으로 실렸다.


이해인


많은 사람이 코로나 이전의 시대와 이후의 시대를 구분 짓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21세기 벨에포크를 이야기하는 걸 듣고 있으면, 우리 사회가 격동기를 지나고 있음을 실감한다. 하지만 주의의 환기를 넘어 사람을 질리게 하는 재난 알림 문자, 사려 없이 쏟아져 나오는 어설픈 코로나 극복 방법과 기회주의적 기획을 보고 있다 보면, 그것이 과연 위기감에 대한 성찰에서 온 것인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코로나 이후 엄청나게 생산되고 소비되는 소독제와 한강에 흩날리는 마스크 쓰레기를 보고 있으면 더더욱 그렇다. 사회적 거리를 두게 하는 등 새로운 생활 규칙으로 자리 잡은 규범적 뉴노멀은 주변의 눈총 때문에라도 쉽게 따르지만, 담담한 마음으로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고 불편을 감수하며 미래 대책으로 삼을 본질적 뉴노멀은 고민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음을 느낀다.

전염병과 환경위기의 시대에 요구되는 뉴 노멀에서 '노멀'은 ‘외부효과*가 대체로 내재해 있어서 형평성 있게 지속할 수 있는 균형 상태’ 또는 ‘그에 필요한 공간적 규범’으로 정의할 수 있다. 도시 공간이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유난스러운 호들갑을 떨쳐내고 차분하게 떠올려보는 ‘대책으로서의 뉴노멀 시티스케이프’에는 몇 가지 필요한 점이 있다.


아주 가까운 미래에 상상하는 뉴노멀 시티스케이프에서

과시적 랜드마크는 누구의 안중에도 없다.

걷는 길이 아름답고 안전해서 탄소 발생 없이 이동과 탐험을 할 수 있고,

도시 경관을 위해 의미 모를 조형물이 필요하지 않으며,

지하주차장 확보라는 목표가 도시 공간의 큰 그림을 주도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불필요한 댐이나 보가 사라진 자연의 하천을 준비하고,

하천과 도시를 연결하는 엘리베이터가 물에 잠길 수 있음을 부정하지 않고,

꾸준히 크고 작은 숲을 가꾸고,

도시 곳곳에 심은 나무가 수명을 다하기를 바란다.

식물애호가와 채식주의자에게 주목하고,

새나 벌의 생존권이나 선호를 등한시하지 않으며,

지속 가능성, 친환경성은 녹색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

무늬만 친환경인 껍데기를 걷어낸다.

지극히 당연한데도 충분히 주창되거나 실현되지 못했던 이런 것들이 갑자기 일어나려면 우리가 하는 일에도 뉴노멀이 필요하다. ‘플랜을 잡는 것’은 이제 설계의 꽃이 아닐 수 있다. 도면상의 해법만 내놓을 게 아니라 사회 문제를 해결할 정치적 역량을 키워야 하기 때문이다. 실천적으로는 사회 현상에 대해 명확한 태도를 갖는 것, 그 태도에 맞는 삶을 사는 것에서 출발할 수 있다. ‘혼자 독보적으로 잘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조경 전문가의 집단 지식을 사회에 좀 더 쓸모 있는 방향으로 형성하고 공유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천은 쉽다. 계속 공유하고 교류하고, 기록을 남기는 것으로 시작한다. ‘주어진 조건에서 길을 잘 찾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조경가의 전문성을 평가하는 시스템이나 조경 설계의 우수성, 당위성, 적합성을 심의하는 과정이 잘못되었다면, 그 안에서 가장 수월한 탈출구만 찾지 말고, 조경의 발전을 옭아매는 낡은 시스템의 껍데기를 걷어내야 한다. 시도해볼 수 있는 실천은 '정상이 아닌 걸 아니라고 말하는 것', 그리고 '그래 봐야 바뀌지 않는다는 말 따위는 흘려듣는 것'이다.


Hope locates itself in the premise that we don’t know what will happen, and in the spaciousness of uncertainty there is room to act.
희망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우리가 알지 못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이러한 광범위한 불확실성 속에 우리가 행동할 여지가 있다.

Olafur Eliasson <In Real Life> Exhibition, Tate Modern 2019-2020 중에서





* 외부효과(externality)란 어떤 시장 참여자의 경제적 행위가 의도치 않거나 예상하지 못한 편익이나 손해를 가져다주는데도, 아무런 대가를 받지도, 지불하지도 않는 현상을 말한다. 크게는 경제 성장이 동반한 환경오염이나 양극화, 작게는 층간소음도 외부효과일 수 있는데 시장이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에 제도가 사회적 협의가 필요하다. 만능은 아니겠지만, 외부효과만 내재화(internalize)하더라도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에 해결의 실마리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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