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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수정일: 2020년 6월 13일

글_이해인(HLD)


NOTE: 이 글은 김영민 교수가 쓴 <패배록(敗北錄)>을 보고 그 글에 공감함과 동시에 우리의 기록도 남기면 좋겠다는 생각에 쓰게 된 패러디 형식의 글이다. 회색 이탤릭은 라펜트에 실린 김영민 교수의 원문이다.





이것은 패배의 기록이다. 패배의 반성도 아니며, 다음의 승리를 위한 복기도 아니다. 비평은 더더욱 아니다. 가시지 않은 신열(身熱) 같은 감정의 잔재이며, 아무도 기억 못 할 안(案)에 대한 하찮은 애도일 뿐이다. 패배자의 개인적 시선에서 쓴, 지극히 주관적인 약 두 달간의 기록이다.


이것은 어쩌면 승리의 기록이다. 반성도 복기도, 비평 역시도 아니다. 가셨다고 생각했지만 가끔 다시 돌아오는 탈락의 충격에 의한 이야기이며, 아무도 기억 못해야할지 아니면 조금은 더 알아줬으면 하는지 스스로도 모르겠는 안(案)에 대한 인간적인 애정일 뿐이다. 좌충우돌하고 있는 한 팀의 시선에서 쓴, 지극히 주관적인 딱 5일간의 기록이다.


4월 10일. 바이런의 N에게서 전화가 왔다. 잠실한강물놀이장 공모전을 함께 하지 않겠냐고. 아직 사람들이 진가를 알아보지 못하는 백자 같은 N은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을 가진 조경가였다. 나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같이하자고 했다.


5월 15일. 영월 동서강 정원조성사업에 대한 제안서 발표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고 있는 H에게 전화를 했다. 잠실한강물놀이장 공모전 우리 한다고. 그렇게 알라고. H는 매우 성실한 사람이다. 그는 당황했지만 걸려들었다.


4월 20일. 지침서를 보고, 지난 계획을 읽고, 다시 지침서를 보고, 법규를 찾아보고, 사례들을 찾아보고, 대상지를 한 번 가보았다. 그리고 다시 지침서를 보았다. 아무것도 그리지는 않고 설계를 했다. 학생들과 논의를 하고, 설계를 생각했다. N과 미팅을 하고, 설계를 생각했다. 사례를 더 찾아보고, 다시 지침서를 보았다. 그리고 설계를 생각했다. 운전하면서 설계를 생각하고, 밥을 먹으며 설계 생각했다. 아무것도 그리지는 않았다.


5월 15일 저녁. 공고문과 지침서를 봤다. 그간 참여자격을 비롯해 몇 가지가 업데이트된 지침이 올라와있었다. 다 못 볼 수도 있었지만 일단 전부 다운로드 받았다. 그리고 다시 지침서를 보았다. 아무것도 그릴 수 없었다. 이거 진짜 해? 한 번 스스로 반문했다가, 설계를 생각했다. 모르겠고 일단 내일 대상지에 한 번 가봐야지. 밥도 먹었다. 맛있다. 아무것도 그리지는 않았다.


4월 26일. 그림을 그리다가 어색함이 사라지지 않아 작은 도면으로 바꾸었다. 그랬더니 배가 고플 때까지 그림을 그릴 수가 있었다. 다시 어두워질 때까지 그림을 그렸다.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 것과 다름이 없었지만, 그만해도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짧아진 색연필을 내려놓았다. 손톱이 푸르스름했고 내일은 큰 도면으로 바꾸어도 될 것 같았다.


5월 16일. 이걸 하고 있다는 어색함이 사라지지 않아 대상지에 가보았다. 그랬더니 배가 고팠다. 다시 밥을 먹었다. 아무것도 그리지 않았지만, 아직은 그냥 안한 걸로 칠 수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 뭐하는 짓이지 싶기도 해서 킥킥거렸다. 오늘까지는 이래도 될 것 같았다.


4월 28일. 세 개의 안이 있었다. 나의 안은 마지막으로 보여주었다. N은 나의 안으로 가자고 했다. N이 안이 마음에 드니 배치도와 조감도부터 제출을 위한 프로덕션을 곧장 시작하겠다고 했다. 긴 논의는 하지 없었고, 별다른 이견도 없었다.


5월 17일. 하나의 안이 생겼다. 나의 안을 보여주었다. H는 나의 안을 가지고 조물딱거리더니 이내 자기 안 비슷하게 만들어서 이렇게 가자고 했다. H는 내일 애들한테 이거 하는 걸 들키지 않고 우리 선에서 끝내려면 프로덕션을 곧장 시작함과 동시에 끝내야 한다고 말했다. 긴 논의는 하지 않았고, 별다른 이견도 없었다.






5월 11일. 연휴가 있었고, 그사이 세 번의 미팅을 했다. 이 주 동안 N의 팀은 설계를 거의 완성단계로 다듬어 놓았다. N의 팀은 3명이었고, 다른 긴박한 프로젝트들도 함께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속도였다. N은 무리라고 생각되는 요소들을 꼼꼼하게 정리하였다. 우리 팀은 마치 하나의 자아를 가진 것처럼 앞으로 나아갔다. 우리는 지침을 다시 보고 우리의 약점과 강점을 점검하고 안을 고쳐나갔다. 아직 빈칸으로 남겨진 다이어그램들은 내가 채워 넣어야 했다.


5월 17일 밤. 주말은 끝나가고, 그 사이 우리는 사무실에서 새벽을 맞았다. 하루가 지나 우리 설계는 거의 완성 단계의 게 모양을 하고 있었다. 속도가 놀라운 건 소용도 없을만큼 짧은 시간만 남았다. H는 무리라고 생각되는 요소들을 대략 정리하였다. 우리는 밤 12시 넘으면 둘이 합쳐도 하나의 인력 밖에 안 나오는 3-40대의 체력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갔다. 우리는 지침을 다시 보고 조금 당황했지만 고칠 시간은 없었다. 아직 빈칸으로 남겨진 다이어그램들은 내일 결국 같이 채워 넣어야 했다.


5월 27일. 일주일 전에 우리는 안을 제출하였고, 다섯 개의 결선작에 들었다. 결선작에 선정되지 않으리라고는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당선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남기지 않기 위해 마음을 다잡았다. 일주일 뒤에 발표가 있다.


5월 20일. 스크리밍 인 디 오피스를 포함한 우여곡절 끝에 마감 시간 안에 무사히 안을 제출하였고, 일주일 후, 다섯 개의 결선작이 발표되었으나 우리의 핀번호는 없다. 믿거나 말거나 결선작에 선정되지 않으리라고는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당선이 될 방법이 사라졌으니 마음을 다독였다. 일주일 뒤에 발표가 없으니 이상했다.


6월 3일, 10시. 경쟁자들은 심사위원 뒷자리에 앉아 서로의 발표를 볼 수 있었고 과정은 인터넷으로 중계되었다. 낯선 방식이었다. 처음은 동심원의 발표였다. 동심원은 언제나 모든 공모전에서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이다. 그러나 발표는 그리 매끄러운 느낌은 아니었다. 두 번째, 우리 팀의 발표자 N은 차분하게 말했고, 질문에는 짧게 대답했다. 나는 우리의 발표가 훌륭했다고 생각했다. 세 번째, 그룹한과 토포텍(Topotek1)의 안은 그 조합만으로 화제가 되었다. 안도 특별했고, 발표도 좋았다. 다만 자연정화에 대한 강조가 오히려 화가 될 듯싶었다. 여러 사무실과 전문가의 연합팀이었지만, 모두가 A 교수팀이라고 불렀던 네 번째 팀의 발표는 젊은 M이 했다. 안은 세련되고 파격적이었으나 현실적 문제점들이 날것 그대로 드러났다. 젊은 M은 발표로 약점을 충분히 가리지는 못했다. 다섯 번째, 건축과 교수인 S의 발표는 유쾌했다. 누가 보아도 공사비를 훌쩍 넘긴 안에 대해서 정작 발표자도 실현 가능성에는 큰 미련은 없다는 듯 자유롭게 발표를 했다.


6월 3일. 인터넷으로 중계된다는 사실을 늦게 알아 처음부터 보지는 못했다. 낯선 방식이었다.


6월 3일, 13시 30분. 예정된 점심시간을 한참 지나 모인 자리에서 심사위원장은 세팀을 결선에 올리겠다고 했다. 동심원, A 교수팀, 그리고 우리였다. 그때 건축가였던 심사위원이 우리 안의 문제를 지적하며 결선에 다른 팀이 올라가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한 심사위원이 현실성과 이용성 때문에 A 교수팀의 안보다 다른 안이 올라가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논의가 길어졌다. 나는 건축가가 가진 적의에 가까운 태도를 잘 이해할 수는 없었다. 기존의 수영장 구조를 유지해 새로움이 없다는 취지였지만, 우리 안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인지, 다른 안을 선호해서 그런 발언을 하는 것인지 정확히 파악되지는 않았다. 건축가가 주장을 굽히지 않자, 나에게 설명의 기회를 주었다.


6월 3일 저녁. 녹화된 영상을 통해 세 팀이 경합하는 것을 보았다. 심사위원의 이야기를 들으며, 의외로 심사과정에서 오가는 대화가 흥미롭다고 느꼈다. 논의는 길었지만, 더 빨리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기존의 수영장을 최대한 활용하라는 것은 지침에 여러 번 나온 사항이었고, 오히려 지침을 유일하게 지키면서 새로운 설계를 제안한 것은 저희 밖에 없습니다.”

지침을 이야기하자 그제야 건축가는 발언을 멈추고 지침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그 건축가는 지침을 처음 읽어보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사워원장이 그사이 정리를 해서 우리를 포함한 세 안을 결선에 올렸다.


지침에 대한 논쟁이 있었는데, 다른 프로젝트의 기본계획과 공모관리를 진행하는 입장에서 생각이 많아지는 지점이었다. 기본계획을 한 사람은 용역사이고, 공모위원이나 심사위원은 외부에서만 채워진다는 것이 참 이상하다.

6월 3일, 14시 30분. 경험이 많은 이들은 이미 공모의 무게 추는 동심원에게 기울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동안 유일하게 별다른 지적을 받지 않은 안이기 때문이었다. 공모에 당선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모든 안들을 압도하는 것. 다른 하나는 상대적으로 문제가 없는 안을 만드는 것. 프로의 공모에서 우열의 격차는 크지 않기 때문에 전자의 경우는 잘 일어나지 않는다. 후자의 방식을 따를 때 심사위원 중에서 적을 만들면 안 된다. 누군가 강력하게 반대를 하면 그 안은 가망이 없다. 이미 건축가는 적의를 드러냈고, 최대한 숨겼어도 그에 대한 나의 적의도 드러났다. 그리고 지침에 대한 나의 반론은 건축가의 적의를 잠재우기는커녕 불을 지폈다.


6월 3일, 영상의 후반부. 함께 듣던 H는 동심원이 된 것이라고 했다. 동심원의 안이 지적을 받지 않고 있다고 했다. 지적 안 받으면 지적해달라고 할 것 같은 안이 하나 있었으니, 상대적으로 많은 개연성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 어드밴티지가 있는 것도 같다.

건축가는 재개된 논의에서 설계가는 지침을 운운하기보다 디자인을 통해 정당성을 보여야 한다고 야단을 쳤다. 이제 건축가를 설득할 수 있는 일말의 여지도 사라졌다. 사실 발표 때는 우리 안보다 A 교수팀의 안이 더 많은 문제점을 지적받았다. 그러나 그 디자인에는 문제점의 심각성을 감쇄할만한 대범함과 강렬함이 있었다. 우리가 직면한 더 큰 문제가 있었다. 가장 적은 지적을 받은 동심원과 설계의 방향이 유사하다는 점이었다. 동심원 안의 유일한 문제가 있다면 지루하고 무난하다는 점이었다. 한 심사위원이 동심원에게 물었다.


”저 안이 캐리비안 베이와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질문이라기보다는 특색이 없다는 지적이었지만, 잠실수영장이 저렴한 캐리비안 베이면 안 될 이유도 없었다. 결국, 우리의 안은 흥미로움에서는 A 교수팀에게는 밀렸고, 문제없음에서는 동심원에게 밀렸다. 우리는 적절히 흥미로운, 문제가 적은 안이었지만, 흥미로움을 지지하고 싶은 심사위원들과 문제없음을 지지하고 싶은 심사위원들 사이에서 우리의 안은 당선작은 아니었다.


어느 정도 심도있는 이야기가 오간 다음에도 논의는 재개되었다. 다른 팀이 문제점을 지적받는 것을 보다가 우리 안을 다시 꺼내보았는데, 보자마자 문제가 좀 있다. 첫 문장에 오타가 있다. 어쨌든, 한 심사위원이 동심원에게 물었다.


“저 안이 캐리비안 베이와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나는 저 안이 캐리비안 베이 같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장소성에 대한 질문이 포함되어 있어 우리는 어땠지 잠깐 생각해봤는데, Y가 후에 말하기를 사실 우리 안보다 동심원의 안이 한강을 잘 품은 것 같다고도 말해서 역시 그랬던걸까 싶었다. 사실 제유(提喩)라는 말로, 장소특정적인 고민을 좀 덜어내려고도 했었으니까. 심사장에서 G가 생각보다 이런 저런 대답을 잘 했다고도 생각했다. 솔직했던 것 같다.

6월 3일, 15시 30분. 동심원 4표, A 교수팀 4표, 우리는 2표를 받아 3위로 떨어졌다. 한 심사위원이 내용상으로는 결선에 올라가야 했을 작품이라고 말해주었고, 심사위원장은 우리에게 표를 던졌다고 위로를 해주었지만, 위로는 위로일 뿐이다. 그리고 공모는 당선작과 그 외의 패작(敗作)들로 나뉠 뿐이다. 공모에서 아름다운 패배 같은 것은 없다. 예상대로 최종적으로 동심원이 당선되었고, 우리는 패할만해서 패했다. 그뿐이다.


6월 3일, 동영상을 다 보고난 후 우리는 서로를 위로하지 않았다. 덤덤하다. "힘들어", "내가 힘들다", 사실 우리의 위로는 어차피 대략 이런 식이다. 공모에는 당선작과 비당선작이 있다. 공모는 정답을 뽑는 곳은 아니다. 우리는 나름의 실험을 했고, 실험을 통해 꽤 많은 답을 얻었다. H는 농담처럼 가끔 왜 갑자기 이걸 하자고 해서 5일을 날렸냐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H도 이 갑작스런 5일의 과정을 싫어하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 도저히 당선될 수도 없고 잘하지도 않은 작품도 결선에 올라 상을 받았다는 점은 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누군가 여기서 다양성 따위를 들먹여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판넬에 완성도 있게 담지는 못한 우리 생각을 결선 발표에서 좀 더 전달할 기회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랐는데, 불발된 점은 아쉽다. 그 뿐이다.

6월 5일. 3시. 이틀째 잠이 잘 오지 않는다. 두 달간 무겁고 무뎠던 개념과 감각을 최대한 날카롭게 갈다 보면 하나의 칼이 된다. 아무것도 베지 못한 칼날이 어디선가 웅웅거린다. 결국에 이 칼은 무뎌져 경험이라는 이름으로 사라질 운명이고, 다른 자리에서 다른 칼을 또다시 갈게 될 것이다.


6월 10일. 이것 저것 하느라 며칠 째 잠이 좀 부족하다. 찾아오는 시점은 언제일지 예상하기 힘들지만, 그냥 사라져버리는 노력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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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수정일: 2020년 5월 28일



서남권 활성화를 위한 국회대로 상부 공원 설계 공모 1단계 리서치 제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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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 이 글은 <환경과 조경> 2017년 6월호에 칼럼으로 실렸다.


이해인


『환경과조경』의 특집 ‘설계사무소를 시작한다는 것’에 신생 디자인 오피스의 하나로 우리 HLD가 소개된 지 벌써 일 년이다(2016년 5월호 참고). 이번 호 칼럼을 의뢰받고 ‘창업, 그 후 일 년’에 대한 글을 쓰려 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하루하루 조경가로 살아가면서 느끼는 감정의 상당 부분이 푸념 같고, 10주년, 20주년, 30주년을 맞은 선배들 앞에서 감히 경험에 대해 주름잡기도 어렵다. 다들 겪는 어려움에 엄살을 부리기도 싫고, 어쩌다 잘 되고 있는 일로 거드름을 피우고 싶지도 않아 셀프 검열을 하다 보니 점점 손가락만 굳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지 않을 때는 괜찮지 않다고 말할 용기가 필요하다는 생각,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한 사람도 있겠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고 우리의 지난 1년 반을 뒤돌아봤다. 우울할지라도 이야기의 시작을 설계비로부터 하지 않을 수 없다.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경험과 풍문을 기반으로 추정해 보면 한국의 조경 설계비는 미국의 절반에 훨씬 못 미친다. 굳이 다른 나라와 비교하지 않더라도 지난 10년간 설계비의 추이를 보면 현재 설계비와 10년 전 설계비 둘 중 하나는 잘못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런 설계비로 좋은 설계가 나온다면 그건 기적에 가깝다. 보통 그런 기적이 일어나려면 잦은 야근, 아드레날린 펌핑, 자가 복제, 눈속임, 주변의 도움, 그리고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설계자의 오지랖 (이른바 자진감리) 등이 필요하다.

업계에서 조경의 목소리가 왜 이렇게 힘을 잃었을까 생각해 보면, 적은 설계비나 급한 일정 때문에 때로는 토목에 걸친 부분은 토목에게, 건축에 물린 부분은 건축에게 넘겨버리는 와중에 우리가 가진 전문성에 마땅한 시장을 잃은 것 같다. 클라이언트의 장단에 잘 맞춰야 다음 일이 있겠다는 생각에 보고 보조 업무에 너무 많은 시간을 뺏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갑 님’들의 요구에 장단을 맞추다 보면 컨설턴트에게 줄 돈이 녹록지 않아서,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미래의 프로젝트를 담보로 여러 컨설턴트에게 공짜 협력을 구걸하기도 한다.

돈을 비교적 쉽게 벌 수 있는 프로젝트도 있다지만 사실 신생 업체에게는 못 먹는 감인 경우가 많다. 엔지니어링 업체나 기술사사무소만 참가 가능한 일도 있지만, 법적으로 이런 요건이 요구되지 않는 경우에도 괜스레 자질을 의심받는 경우가 있다. 여전히 알음알음 인맥이나 로비가 강한 힘을 발휘한다고 한다. 왜 굳이 ‘자격’이나 ‘실적’을 중시하게 되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역설적으로 이런 것들은 강자독식 구도를 견고히 하는 데 아주 톡톡한 역할을 한다. 뭐가 좋은 설계인지 판단할 능력이 없을 때는 이런 기준이라도 있는 게 편하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어떻게 끊을 수 있을까?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누군가 말한다. “자리 잡으려면 5년은 걸리지.” 이건 대답이 아니라 도피적인 화제 전환에 가깝다. 여기에 공감하는 바가 있다면, 그건 이 악순환에서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에 대한 논의가 무의미하다는 것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흑인 운동의 상징적 지도자 엘드리지 클리버 Eldridge Cleaver가 말했듯, “적극적으로 해결책이 되려고 하지 않으면, 나도 문제의 일부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노력한다. 설계를 할 때는 낮은 설계비 핑계를 대지 않고 최선을 다하되, 낮은 설계비가 직원들이나 컨설턴트의 공짜 노동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설계비 책정은 최대한 꼼꼼하게, 가격 협상은 때론 공격적으로, 과중한 추가 업무에 대한 불평은 최대한 전문적으로 하려고 한다. 나름 평생 ‘독한년’ 소리 듣고 살아온 나에게도 이런 역할이 때로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곳곳에서 함께 싸우는 동지를 만나기도 하고 운이 좋게 훌륭한 발주처나 시공자를 만나서 일이 잘 풀리기도 하니, 계속 싸워나갈 의지가 생기고 희망이 보인다.

설계비 낮다고 구시렁대면서도 자존심일지 책임감일지 모르는 독한 마음으로 도면을 납품하면, 이런 도면은 처음 받아봤다는 칭찬을 듣기도 한다. 특히 상세도면이나 정지계획도, 도면에 달린 각종 노트에 대해서 그런 반응이 많다. 물론 시공자가 우리의 정지계획도나 상세도를 너무 어려워하거나 예산이 없어 결국 시공자가 원래 알던 방식으로 시공되는 일이 허다하지만, 적어도 도면에 전문성이 추가되면 설계비가 달라질 수도 있다는 점은 큰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외부적인 문제 말고도, 낮은 설계비와 짧은 설계 기간을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 스스로 효율성을 끌어올리는 노력을 하고 있다. 삽질을 줄여야 연구할 시간이 나온다. 이를 위한 방법으로, HLD는 매주 지식 공유 세션을 갖고 있다. 회사 구성원이 돌아가면서 자신의 노하우를 동료에게 전수한다. 이제는 ‘캐신(캐드의 신)’과 ‘포신’, ‘스신’의 비법이 회사 표준이 되었고, 지식 공유 세션의 내용들이 매뉴얼로 쌓여가고 있다. 모든 사람이 모든 툴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날이 곧 올 것 같다. 인원이 얼마 되지 않는 우리 회사 내부 밑천이 떨어질 때면 외부 인사, 특히 시공의 최전방에 나가 있는 전문가를 모셔 특강을 진행해 압축적으로 현장 지식을 전수받고 있다. 자격증 취득으로는 가질 수 없는 힘을 키워나가고 있다.

함께 설계비 좀 올려 보자. 우리의 먹고 사는 문제나 품위 유지비 벌이의 문제가 아니라 업계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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