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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사무실 이전을 앞둔 어느 금요일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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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spaciousness of uncertainty, there is room to act.


Note: 이 글은 <환경과 조경> 2020년 10월호에 [뉴노멀 시티스케이프] 기획으로 실렸다.


이해인


많은 사람이 코로나 이전의 시대와 이후의 시대를 구분 짓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21세기 벨에포크를 이야기하는 걸 듣고 있으면, 우리 사회가 격동기를 지나고 있음을 실감한다. 하지만 주의의 환기를 넘어 사람을 질리게 하는 재난 알림 문자, 사려 없이 쏟아져 나오는 어설픈 코로나 극복 방법과 기회주의적 기획을 보고 있다 보면, 그것이 과연 위기감에 대한 성찰에서 온 것인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코로나 이후 엄청나게 생산되고 소비되는 소독제와 한강에 흩날리는 마스크 쓰레기를 보고 있으면 더더욱 그렇다. 사회적 거리를 두게 하는 등 새로운 생활 규칙으로 자리 잡은 규범적 뉴노멀은 주변의 눈총 때문에라도 쉽게 따르지만, 담담한 마음으로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고 불편을 감수하며 미래 대책으로 삼을 본질적 뉴노멀은 고민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음을 느낀다.

전염병과 환경위기의 시대에 요구되는 뉴 노멀에서 '노멀'은 ‘외부효과*가 대체로 내재해 있어서 형평성 있게 지속할 수 있는 균형 상태’ 또는 ‘그에 필요한 공간적 규범’으로 정의할 수 있다. 도시 공간이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유난스러운 호들갑을 떨쳐내고 차분하게 떠올려보는 ‘대책으로서의 뉴노멀 시티스케이프’에는 몇 가지 필요한 점이 있다.


아주 가까운 미래에 상상하는 뉴노멀 시티스케이프에서

과시적 랜드마크는 누구의 안중에도 없다.

걷는 길이 아름답고 안전해서 탄소 발생 없이 이동과 탐험을 할 수 있고,

도시 경관을 위해 의미 모를 조형물이 필요하지 않으며,

지하주차장 확보라는 목표가 도시 공간의 큰 그림을 주도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불필요한 댐이나 보가 사라진 자연의 하천을 준비하고,

하천과 도시를 연결하는 엘리베이터가 물에 잠길 수 있음을 부정하지 않고,

꾸준히 크고 작은 숲을 가꾸고,

도시 곳곳에 심은 나무가 수명을 다하기를 바란다.

식물애호가와 채식주의자에게 주목하고,

새나 벌의 생존권이나 선호를 등한시하지 않으며,

지속 가능성, 친환경성은 녹색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

무늬만 친환경인 껍데기를 걷어낸다.

지극히 당연한데도 충분히 주창되거나 실현되지 못했던 이런 것들이 갑자기 일어나려면 우리가 하는 일에도 뉴노멀이 필요하다. ‘플랜을 잡는 것’은 이제 설계의 꽃이 아닐 수 있다. 도면상의 해법만 내놓을 게 아니라 사회 문제를 해결할 정치적 역량을 키워야 하기 때문이다. 실천적으로는 사회 현상에 대해 명확한 태도를 갖는 것, 그 태도에 맞는 삶을 사는 것에서 출발할 수 있다. ‘혼자 독보적으로 잘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조경 전문가의 집단 지식을 사회에 좀 더 쓸모 있는 방향으로 형성하고 공유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천은 쉽다. 계속 공유하고 교류하고, 기록을 남기는 것으로 시작한다. ‘주어진 조건에서 길을 잘 찾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조경가의 전문성을 평가하는 시스템이나 조경 설계의 우수성, 당위성, 적합성을 심의하는 과정이 잘못되었다면, 그 안에서 가장 수월한 탈출구만 찾지 말고, 조경의 발전을 옭아매는 낡은 시스템의 껍데기를 걷어내야 한다. 시도해볼 수 있는 실천은 '정상이 아닌 걸 아니라고 말하는 것', 그리고 '그래 봐야 바뀌지 않는다는 말 따위는 흘려듣는 것'이다.


Hope locates itself in the premise that we don’t know what will happen, and in the spaciousness of uncertainty there is room to act.
희망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우리가 알지 못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이러한 광범위한 불확실성 속에 우리가 행동할 여지가 있다.

Olafur Eliasson <In Real Life> Exhibition, Tate Modern 2019-2020 중에서





* 외부효과(externality)란 어떤 시장 참여자의 경제적 행위가 의도치 않거나 예상하지 못한 편익이나 손해를 가져다주는데도, 아무런 대가를 받지도, 지불하지도 않는 현상을 말한다. 크게는 경제 성장이 동반한 환경오염이나 양극화, 작게는 층간소음도 외부효과일 수 있는데 시장이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에 제도가 사회적 협의가 필요하다. 만능은 아니겠지만, 외부효과만 내재화(internalize)하더라도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에 해결의 실마리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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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gbin Lee answers 48 chilled yet intriguing questions at HLD's new office. As Jungbin answers questions about daily life as a designer, he gives a tour of HLD's creative, cooperative and playful place and talks about his excitement about what will be unfolded in his and HLD's future.


Interviewed by Yoonbeen Kim

Filmed by Jinsun Lee


2020.09.11


이정빈 디자이너가 HLD의 새 오피스에서 48가지 소소하면서도 흥미로운 질문에 답한다. 설계자로서의 일상을 들려주는 그를 따라 움직이며 창의력을 끌어낼 수 있는 다양한 공간들을 만날 수 있다. 앞으로 더욱 재밌어질 것이라 말하는 HLD의 미래, 그리고 정빈의 도전이 기대된다.


인터뷰 by 김윤빈

촬영 by 이진선


2020.09.11



자막:


[로비, YB의 노크에 스스륵 열리는 유리문] (0:00)

YB: 안녕하세요?

JB: 엇, 안녕하세요

YB: 반갑습니다. 준비 되셨어요?

JB: 네, 바로 시작하실까요?

YB: 네, 지금 뭐 하시던 중이었어요?

JB: 커피 사들고 왔어요. 커피 한 잔 드시겠어요?


[키친] (0:23)

YB: 감사하죠. 평소 출근 시간은?

JB: 9시에서 9시 반 사이? 그런데 다 출근 시간이 다 달라서, 대체로 맨 뒤에서 세 번째 이내.

YB: 본인만의 모닝 루틴이 있나요?

JB: 커피 한 잔 마시고 테라스에서 한 숨 돌려요.

[뽑기기계에서 커피 캡슐을 뽑았는데, 그 안에서 질문이 나왔다.]

JB: (쪽지를 보여주며) 훗, 요즘 출근 송은? 음.. 날씨 좋을 때는 아이유 에잇, 나쁠 때는 아비치 Waiting For Love

YB: 출퇴근 시간은 얼마나 걸리나요?

JB: 절망적인 30분이요.

YB: 이상적인 출퇴근 소요시간은?

JB: 음.. 걸어서 3분?

YB: 하루에 커피는 몇 잔 정도 드시나요?

JB: 세네잔 정도 마셔요. 핸드드립 해서 마실 수도 있고, 네스프레소 머신도 있고, 여기 티도 있고.

YB: 커피랑 티 중에서 고르면?

JB: 아이스커피, 그리고 따뜻한 티. 밀크티 있으면 무조건 그걸로.

YB: (커피 건내 받으며) 감사합니다.

JB: 네.

YB: 오늘은 아비치 노래를 들으셨겠네요. 정원이 있는데요?

JB: 아, 저쪽 가면 더 잘 보여요. 저 쪽으로 가보시겠어요?

YB: 자신만의 평소 습관이 있다면?

JB: 드라이기 최대로 해놓고, 머리 말리면서 노래 부르기.


[미팅룸] (1:32)

JB:ㅎㅎ 이쪽은 회의실이에요.

YB: 사무실 뷰는 언제가 가장 좋나요?

JB: 뷰만 따지면 야경. 근데, 사무실에서 야경 보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요?

YB: 그럼, 야경 좋은 저녁과 시원한 그늘 아래 점심. 둘 중 하나를 고르면?

JB: 점심을 고를 것 같아요. 저기 밖에 있을 수도 있고.

YB: 가장 좋아하는 점심 메뉴는?

JB: 야채 많은 김밥. 홍콩에서 자주 먹어서.

YB: 이건 어떤 모델이에요?

JB: 제가 하는 한강 보행 네트워크 연결 거점 모델입니다. (모형 상판을 들어올리며) 짠!

YB: 요즘 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JB: 이름이 좀 긴데, 댐자원을 활용한 국민체감형 스마트 레벨업.

YB: 현재 몇 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어요?

JB: 2개. 많으면 4개 까지도.

[전자칠판 화면이 바뀌며 HY 등장]

HY: (이호영) 짠!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는?

JB: 어허허. 탄천 국제교류복합지구인데 잠실에 있는 수변공간 전체에 대한 디자인이었어요. 제가 가장 처음 한 거기도 하고. (속삭이며) 이거 어제 와서 조금 신나셨어요. 이 쪽으로 가보실까요?

YB: 모델을 자주 만드시나요?

JB: 모델 하면, HLD죠!


[모델룸] (2:47)

JB: (모델룸 문을 열고) 안녕하세요?

MY: 본인만의 모델 만드는 팁은?

JB: 접착은 두 번. 안 보이는 데까지.


[워킹스페이스] (2:54)

YJ: (신영재) 가장 좋아하는 식물은?

JB: 의외로, 남천.

YB: MBTI는?

JB: INFP. 그런데 희한한게, 여기는 인프피(INFP), 인티제(INTJ), 엔프제(ENFJ)... 흔하지 않은 사람만 흔해요.

YB: 스트레스 관리법?

JB: 일단 윈터멜론 티를 하나 사든 다음에, 14시간 정도 푹 자요.

YB: 일에 있어서 순간집중형? 마라토너형?

JB: 변칙적인 순간집중형으로 해주십쇼.

YB: 앞으로 해보고 싶은 일은?

JB: 포스트 인더스트리얼 디자인.

YB: 책상을 한 번 소개해 주실래요?

JB: 일단 여기 앉으면, 모니터 뒤에 테라스가 보이고... 여기는 제가 눌러쓰기를 좋아해서 좋아하는 펜들, 그리고 버리기 아까워서 가지고 있는 티 상자, 마침 요즘 이건 진짜 설정 아닌데, 이거 읽어요. <홍차, 너무나 영국적인>. 그리고 아이패드는 뭐 항상 한몸처럼 들고다니고.

YB: 누가 어디에 앉을지는 어떻게 정했나요?

JB: 정한거 아니고, 제비뽑기 당했어요.

YB: 만족하시나요?

JB: 절대, 노. 6개월 뒤에 바로 창가자리로 갈거에요. 그런데 사실, 여기 말고도 일할 곳은 많아요. 아까 본 회의실도 있고, 아니면 저쪽에 있는 곳에서 원한다면 할 수도 있고.


[화이트보드] (4:10)

YB: 새 사무실의 좋은 점은?

JB: 음. 일단 공간이 넓어요. 회의실에 할 거 들고가서 펼쳐놓고 할 수도 있고, 여기서 막 이야기하다가 벽에 붙여놓고. 밖에서 먹으면서 한다던가, 아니면 개인 공간도 있어서 숨어서 혼자서 창의 뿜뿜 할 수도 있고.

YB: 그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공간은?

JB: 테라스! 탁 트인 공간, 딱 좋아요.

YB: 아쉬운 점도 있나요?

JB: 음, 역시 테라스. 좀 더 넓었으면 좋겠어요.

JS: (이진선, 모닝필라테스 클래스에 사인업하다가) 필라테스 해봤어?

JB: 음, 해보려고. 같이 해줄래? YB: 평소에 즐기는 운동은?

JB: 등산. 잠깐 음악 좀 틀게요. Echo, play some music.

[Echo의 반응이 느리지만, 잘 들어보면 음악이 들린다.]

YB: 저 뒤로는 뭐가 있어요?

JB: 보여드릴게요.

YB: 평소에 지니고 다니는 물건은?

JB: 폰 말고는, 선글라스 정도.


[아카이브룸] (5:13)

JB: 여기는 3D 프린터가 있고요, 저쪽에는 저희 나머지 모델들, 그리고 샘플 진열대가 있어요. 아, 참. (커튼을 젖히며) 여기서 잘 수도 있어요.

SY: (김소영, 구글 카드보드를 낀 채 자고 있다.)

JB: (SY을 발견하고 커튼을 다시 닫아주며) 나갈게요.

YB: (소근거리며) 책이 많네요. (원래 볼륨으로) 평소에 자주 읽으시나요?

JB: MMS에서 소개를 자주 해서요.


[책장] (5:35)

YB: MMS가 뭐에요?

JB: Monday Morning Session, 지식공유.

YB: 가장 최근에 공유한 지식

JB: (마침 옆에 있는 책을 집어들며) 여기 딱 있는데, <2050 거주불능 지구>

YB: 인생을 바꾼 MMS가 있다면?

JB: 음, <영화와 디자인의 관계>

YB: (잠시 책장의 엽서를 한 번 뽑아본다)


[소장실] (5:55)

JB: (유리문 안 고양이를 가리키며) 저희 전무님이세요.

YB: 엇, 개와 고양이 중 고르자면?

JB: 당연히 고양이를 고르겠죠?

HI: (이해인, 줄을 당겨 블라인드 살 방향을 바꾼다.)

JB: (블라인드에 적힌 질문 - 세상에서 어느 한 가지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면? - 을 손으로 가리키며) 이건 일단 기온을 2도 정도 낮춰좋고 시작하고 싶네요. (테라스로 나가며) 안녕하세요?

JH: (김주환, 쿨하게 쪽지를 하나 건넨다.)

JB: ("가장 자신다울 수 있는 순간은? " 질문이 적힌 쪽지를 펼쳐보이며) 본가에 내려갈 때.


[남쪽 테라스] (6:18)

JB: 여기가 제 최애 공간이에요. 정말 좋죠?

YB: 이 곳에 있는 식물들 이름은 전부 알고 계시나요?

JB: 까마귀밥, 좀작살나무, 사초들.

YB: 정원에 있을 때 하는 행동은?

JB: 사실 딱히 뭐 하는 건 없어요. 광합성하고. 오늘 같은 날이 아니면. 어, 저기 출근하는 분 있는데? (크게 아래를 향해) 안녕하세요?

SY: (이상엽, 손을 흔들어주고 인사를 하다가 쑥스러운 듯 사라진다.)

JB: (카톡으로 전달된 SY의 질문 - HLD에 오게 된 계기는? - 을 보여주며) ㅎㅎ. 소장님이 참여하셨던 성균관대-홍콩대 조인트 스튜디오. 저는 한국에 온 학생들 보조하는 졸업생 도슨트 같은 역이었는데, 우리 교수님이 너 백수지? 하면서 내미셨던 명함이 바로 여기에요.

YB: 디자이너 이정빈은 어떤 사람인가요?

JB: 역사와 문화에 편견이 없고 싶은 사람.

YB: 5년 뒤의 이정빈은?

JB: 아마 앞으로 계속 뭘 할까 몽상하고 있을 것 같아요. 해상도시 디자인이라던가...

YB: 앞으로의 HLD는?

JB: 계속 재밌어 질거에요.

YB: 이제 곧 끝날 시간이 된 것 같아요. 오늘 바쁘신가요?

JB: 바쁘죠. 뭐, 댐자원도 해야하고.

YB: 금요일인데 바쁘신가요?

JB: 5시 해피아워 전에 끝내려고요.

YB: 그럼, 이쯤에서 마무리할게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JB: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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